중독에 빠진 아이... 살릴 길은 관계 재설정
중독에 빠진 아이... 살릴 길은 관계 재설정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3.18 13: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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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중독과 관련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름하여 ‘쥐 공원 실험’. 1980년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가 진행한 실험인데, 그 내용과 결과는 이렇다. 쥐 암수 열 쌍씩을 각각 비좁고 더러운 우리와 쥐가 좋아하는 놀잇감이 가득한 깨끗한 우리에 넣었을 때 후자가 마약에 중독될 확률이 훨씬 낮았다는 것. 깨끗한 우리 안의 쥐들은 더러운 우리의 쥐들보다 마약에 중독될 확률이 열여섯 배 낮았고, 마약에 중독된 이후에도 빠르게 중독에서 벗어났다. 실험을 통해 알렉산더는 특정 물질보다는 고립되고 결핍된 환경이 중독의 주요 원인이란 가설을 설정했고, 이는 지금까지 중론으로 여겨진다.

책 『우리 아리 중독 심리 백과』(스토어하우스)의 저자인 중독 치료 전문가 5인 역시 결핍이 중독의 원인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책에 소개된 중독 청소년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결핍을 앓고 있다. 불화한 부모 사이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관심의 결핍을 앓던 고등학교 2학년 민수는 우연히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푼돈을 땄던 게 계기가 돼 도박중독에 빠지게 됐다. 3년 만에 빚만 800만원이 쌓였다. 중학교 2학년 혜원은 오히려 과도한 관심이 중독을 낳았다. 이른바 엘리트 부모 밑에서 풍요롭게 생활했지만, 과도한 성적 압박 탓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용납되지 못하는 결핍을 경험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자해 사진을 본 뒤 몸에 칼을 대는 일이 잦아졌다. 저자들은 “(대체로 많은) 부모들이 물질적으로는 충분히 채워주지만 정서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은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정서적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중독적인 자극들을 찾아 제 속을 채워 넣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독의 기준은 무엇일까? 중독의 판단 기준은 세 가지다. 자극을 얻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반복성)하고, 의식과 무관하게 몸이 먼저 움직(습관성)이며, 특정 자극이 없으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의존성)한 상황에 도달한 상황을 전문가들은 중독으로 간주한다. 인내 끝에 큰 욕구 충족을 얻기보다는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 역시 중독의 주요한 특징인데, 실제로 물질 중독(흡연·음주)과 행위 중독(스마트폰·게임·자해·성·도박) 모두 일회성 쾌락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중독의 가장 큰 폐해는 자기 파괴이다. 킹스칼리지런던의 임상심리학자 프랭크 탤리스가 “처음에는 쾌락 때문에 중독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쾌락은 줄어들고 이후로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중독을 이어간다”고 말했듯, 중독은 심각한 자기 파괴를 동반한다. 특히 자신을 학대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자해 중독의 심각성은 상당한 수준이다. 대체로 이들은 몸에 칼을 대거나 주사기로 피를 뽑는 사혈 등의 통증으로 잠시 삶의 고통을 잊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2학년 현성이는 “자해를 하면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 죄책감이 조금 사라진다”며 사혈을 하다가 과다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번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자해 행위를 그저 관심받고 싶은 아이의 일탈 행동으로 오해한다”며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하는 경우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자해를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중독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저자들은 ‘관계 재설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관계 재설정의 대상에는 결핍을 초래한 대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결핍을 채우기 위한 중독과의 관계를 포괄한다. 인간관계에서 기인한 결핍을 물질 중독으로 해소해왔다면, 인간관계 회복에 중점을 두고 중독 대상과의 거리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빠진 중독 대상을 단순한 물질이나 행동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대부분 그 대상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강제로 떼어놓으려 하면 반발하게 마련”이라며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중독된 대상과 만나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주는 것. 환경을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독의 쾌감을 점차 다른 즐거움으로 대체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책에서 게임중독 사례로 언급된 민성이는 게임 시간을 줄이는 대신 부모님과 함께 만화책 보기, 음악 듣기, 보드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 게임 시간을 1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였다. 휘발성이 높은 일시적 쾌락을 여운이 긴 즐거움으로 ‘부모와 함께’ 추구했던 것이 주효했다. 저자들은 “근원적 결핍을 올바른 방식으로 채우지 못하는 문제, 사회·문화적 원인에서 기인한 중독은 관계 재설정 작업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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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23-12-13 17:16:45
인생은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아가는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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