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 흘려듣기’ 좋은 날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 흘려듣기’ 좋은 날
  • 스미레
  • 승인 2021.03.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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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동네를 둘러보다 책 대여점에 들른 적이 있다. 정숙한 분위기의 그곳은 책 대여와 동시에 독서를 지도하는 곳이었다. 선생님의 시선 아래서 아이들은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잔소리가 내리꽂혔다. 팽팽한 긴장과 엄격함에 숨이 막혀 나도 모르게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나 역시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책 보기를 권유받으며 자랐다. 편한 자세로 본다면 책이 더 재밌게 느껴질 텐데 왜인지 어른들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연히 본‘세서미 스트리트’속 외국 아이들은 각양각색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듣는 게 아닌가. 저 아이들은 천국에 있는 기분이겠지? 그날도 반듯하게 앉아 TV를 보던 한 어린이는 생각했더란다.

그리하여 비교적 일찍 내려놓은 것이 아이의 책 읽는 자세다. 우리 아이는 대단한 운동량을 가진 데다 호기심도 많다. 그걸 무시한 채 반듯하게 책 읽는 아이를 기대하며 책육아 선배들이 강추하는 독서대와 아기 소파를 구매했다. 그런데 역시나. 아이는 독서대를 보자마자 드라이버를 들고 와 야무지게 분해했고 아기 소파는 뜀틀로 사용했다.

블로그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갈히 앉아 책을 보던데. 너무나도 편안해 보이는 우리 아이를 보면‘똑바로 앉아!’란 말이 울컥울컥 나왔다. 그러면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아이는 책을 덮고 일어나버렸다.

결국, 잔소리를 삼키고 쿠션을 들었다. 아이 자세가 불편해 보이면 책 밑이나 아이 등 뒤에 슬쩍 쿠션을 괴어주거나 쿠션 방향을 바꿔주었다. 어설피 지적하고 교정하려다 아이의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는 아이의 건강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늘 관심 있게 지켜본다. 서 있는 자세나 식사하는 자세 등 평소 아이의 자세를 잘 잡아주려 노력하지만, 책 읽을 때만은 예외다. 최대한 편하게 둔다.

어디까지나‘지금 책보는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려니’생각한다. 특히 내가 읽어줄 때는 더 세심히 아이 기분과 컨디션을 존중한다. 눕든 앉든 구르든, 듣는 자세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아이는 집중력이 좋고 자세가 바르다는 칭찬을 곧잘 받는다. 흔히 집에서 늘어지면 밖에서도 그러리라 예상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이는 어디까지나 아이인데, 종일 각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집에서 편안히 모은 좋은 기분과 에너지를 밖에서 바른 자세와 멋진 태도로 승화시킨다. 집에서 좀 새어야 밖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도 있는 것이다.

아이의 아가 시절, 열심히 책을 읽어주는데 엉덩이를 들썩대던 아이가 기어코 자리를 떴다. 목소리를 높여 주의를 끌어보려 했지만 아이는 무심히 딴짓이다. 읽어봤자 목만 축나는 것 같아 책을 덮는 순간 들려온 건, 멀찍이 등을 돌린 아이의 재촉이었다.“엄마, 더, 더!”

의외로 많은 아이가‘듣는 것’을 좋아하는 청각적인 아이라고 한다. 우리 아이도 그렇다. 그림과 활자에 집중하는 시각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청각적인 아이들은 상황 불문 이야기에 집중하는 능력이 좋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그 능력을 믿었다. 옆에 끼고 일일이 짚어주고 확인하며 읽어줘야 한다는 강박을 지웠다.

아이가 딴짓을 하거나 돌아다녀도‘흘려듣기 시킨다’생각하고 읽어줬다. 책을 읽어줄 땐 오는 아이 막지 않고 가는 아이 붙잡지도 않는다. 읽기를 멈추면 아이는 딴짓을 하다가도“다음은요?”하고 물어왔다. 별다른 요구가 없는 이상 아이가 옆에 있든 없든 멈추지 않고 읽었다.

많은 이들이 영어책 흘려듣기엔 관대한 것 같다.‘흘려’들어도 좋다며 종일 CD를 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 말 책을 읽어줄 땐 집중 듣기를 강요할까? 평상시 책을 읽어줄 때도‘영어책 흘려듣기’만큼의 관대함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나지막이 책 읽어주는 엄마 목소리만큼 좋은 배경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책 읽는 엄마 목소리를 들을 때 아이는 안정을 얻는다. 잔잔하고 단단해져 가는 아이의 내면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은 짐작이 아닌 확신이 되곤 한다.

하여, 책 읽는 내 목소리가 벽지처럼 공간을 둘러싸고 배경으로 녹아들기를 오늘도 바란다. 그렇게 흘러가 버릴지언정 버려지지는 않을 테니까. 아이는 포근한 엄마 음성을 통해 날아든 책 속의 활자며 이미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제 안에 그려 넣는다.

아이가 어쩐지 늘어지고 산만한 날, 좋은 배경음 틀듯 책을 읽어준다. 365일 중 350일쯤 되는 보통 날, 오늘은 책 흘려듣기 좋은 날이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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