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전국축제자랑』
[책 속 명문장]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전국축제자랑』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3.12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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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대회가 시작되고 진행자의 멘트와 시합장 주변에 몰려든 관중이 큰 소리로 두는 훈수를 통해 차차 답을 알게 되었다. 높이와 횟수를 기본으로(기술 점수) 가능한 한 양팔을 좌우로 곧게 펴고 균형 잡힌 자태로 아름답게 널을 뛸수록 가산점이 붙고(예술 점수) 큰 소리로 응원하는 면에 점수를 더 얹어 주는(주먹구구식 응원 점수) 것이다. 면별로 색색의 한복을 맞춰 입고 함성에 맞춰 번갈아 하늘로 튀어오르는 모습은 흥겨웠고, 쿵 슉 쿵 슉 리듬에 맞춰 어느 틈에 우리도 나름의 심사를 하고 있었다. “낮아, 낮아.” “오, 안정적!” 따위의 촌평을 속닥거리며.<41쪽>

찬란한 봄의 유채꽃밭을 지나 축제장에 가까워지는 길, 유채꽃들이 찰랑일 때마다 입안에 레몬 과립 다섯 포를 한꺼번에 털어 넣은 듯한 상큼함이 밀려왔는데, 어느 순간 꽃향기의 틈새를 비집고 홍어 향이 진하게 풍겨 오기 시작했다. 홍어를 넣은 화전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누군가가 실수로라도 그런 걸 만들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기괴한 냄새였다. 한데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그 비슷한 걸 보고야 말았다. 노란 유채꽃밭 한가운데에 빨간 꽃을 홍어 모양으로 심어, 위에서 보면 빨간 거대 홍어의 형상이 드러나는 꽃밭이 나타난 것이다. 홍어로 화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꽃으로 홍어를 만들 줄은 몰랐지……. 이 꽃들은 기껏 열심히 향기롭게 자랐더니 결국 홍어가 된 운명을 어떻게 생각할까. <55쪽>

횃불 대열을 이룬 이들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외국인도 있었다. 누군가는 진중하게 걸음을 떼었고, 누군가는 겅중겅중 뛰었다. 누군가는 옆 친구 손을 꼭 잡고 흔들었고, 누군가는 인도를 향해 얼굴 모를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우리도 마주 흔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오가 얼마나 긴가 싶어 후미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즈음, 우리는 보았다. 모퉁이에서 함성을 내지르며 행렬 끝에 합류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또 조금 후에는 편의점 앞에서 합류하는 학생들을, 또 이어서 합류하는 농악대와 주민들을. 그 순간 우리 마음에 일어난 작은 동요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78~79쪽>

‘창포물에 머리 감기’라는 어구에서 풍기는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느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인력들이 동원된, 약간 ‘창포물 세발(洗髮)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오른 기분이 들었지만, 많은 인원이 밀리지 않게 빨리빨리 체험하고 지나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했다. 이런 유의 서비스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주변머리는 없고 감을 머리만 있었던 우리는 잔뜩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채 머리 감겨지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체험장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웃어 댔다. 그럴 때마다 대관령 정상에서 한기가 내려오듯 살짝 젖은 머리카락에서 선선하게 내려오는 창포 향에 취한 우리는 ‘버드나무’라는 강릉의 맥주 양조장에서 단오절 한정으로 창포를 넣어 만든 맥주 ‘창포 세종’을 마시며 창포에 더욱 취해 갔다.<158~159쪽>

『전국축제자랑』
김혼비, 박태하 지음 | 민음사 펴냄 | 296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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