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②]
  • 황현탁
  • 승인 2021.03.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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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한글 최초 번역본 표지
천로역정번역자 제임스 게일목사
천로역정번역자 제임스 게일목사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천로역정』은 영국의 작가이자 목회자였던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이 1678년에 출판한 기독교 우의소설(Christian allegory fiction)이다. 출판 당시 제목은 『The Pilgrim’s Progress from This World to That Which Is to Come ; Delivered under the Similitude of a Dream』로 아주 길다.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캐나다 선교사이자 장로교 목사인 제임스 게일(James S. Gale,1863~1937)이 번역․소개했다. 이는 한국 근대의 첫 번역소설에 해당한다. 원제목을 직역하면 ‘순례자의 행정(行程)’쯤으로 제목을 붙여야 하지만 1853년 일본에서 『天路歴程』으로 번역된 것을 참고하여 같은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로역정을 우리말로 옮기면 순례자가 ‘천국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멸망의 도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크리스천이 구원을 찾지 못해 헤맬 때 전도자가 나타나 환한 빛(shining light)이 보이는 좁은 문으로 가면 천국(Celestial City, 번역서에는 '천성'으로 되어 있음)으로 안내받게 될 것이라고 하여 길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크리스천은 여행길에 고집, 변덕, 도움, 세속현자, 선의, 해석자, 문지기, 겁쟁이, 불신, 경건, 신중, 자비, 마귀 아불루온(Apollyon), 수다쟁이, 질투, 미신, 아첨쟁이, 재판관, 사심, 절망의 거인, 구두쇠, 성실, 무지, 무신론자 등을 여러 인물을 만난다. 그들은 사기꾼이거나 위선자들로 크리스천은 그들로부터 천국으로의 여정에 도움을 받기는커녕 방해를 받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때로는 감금되거나 자살을 강요받는다. 당연히 여정은 지체된다.

크리스천은 신실(Faithful)과 함께 천국으로의 여정에 동행하던 중 헛됨의 시장(Vanity Fair)에서 무고를 당해 재판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신실은 처형돼 순교하고, 이후 나타난 소망(Hopeful)과 동행해 우여곡절 끝에 이사야서 45장 17절,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히 살게 될 영원한 나라'인 천국까지 가게 된다.

크리스천, 신실, 소망이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서로 간 종교적인 믿음이나 행로를 이야기할 때에는 ‘하느님의 율법서와 복음서’인 성서에 기반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따라서 저자 존 번연이 <글쓴이의 변>에서 밝힌 대로 책의 많은 부분에서 천국을 향하는 세 사람과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는 ‘대화체’로 진행되며, 주된 내용은 ‘믿음’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이야기 자체가 성서에 바탕을 둔 말씀이다.

어느 날 ‘고집’이 가족까지 버리고 천국을 찾아 떠나는 이유를 묻자 크리스천은 베드로전서 1장4절, 히브리서 11장 16절을 들어 ‘썩지도, 더러워지지도, 쇠하지도 않는 유업을 찾으러 간다.’고 한다. 시온산에 가려는 이유를 묻는 ‘신중’에게는 ‘그곳에 죽음이 없다’는 이사야서 25장 8절과 요한계시록 21장 4절을 인용하여 답하고 있다. 또 크리스천은 지옥의 입구가 보이자 에베소서 6장 18절 및 시편 116장 4절을 인용하여 기도라는 무기를 꺼내면서, “여호아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답한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은 멸망의 도시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현재의 세상을 의미한다. 최종 목적지는 시나이 산이 있는 천국으로, 이는 다가올 세상을 상징한다. 가는 도중에는 절망의 늪, 좁은 문, 해석의 집, 곤고의 산, 겸손의 골짜기, 음침의 골짜기, 헛됨의 시장, 의심의 성, 기쁨산맥, 마법의 땅, 이사야 62장 4절에 등장하는 ‘쁄라의 땅(The Land of Beulah)’ 등이 등장한다. 이런 곳에서 순례자들은 쉬거나 안내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난관이 도사리거나 갈림길이 있어 고난을 겪는다.

크리스천과 신실, 소망은 만나는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가졌을 땐 성서를 인용하여 설득을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순례자 크리스천과 소망은 서로를 격려하며, 마침내 죽음의 강을 건너 히브리서 12장 22~23절에서 말하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천사들과 의인들의 영이 사는 시온산의 새 예루살렘에 도착’, 수금과 면류관을 받고 주님의 기쁨에 참여한다. 그 순간 잠에서 깬다. 주인공 크리스천의 천국 여행은 ‘꿈속(dream sequence)의 여행’이었다. 나는 성서를 단편적으로 접했을 뿐 읽어 본 적이 없어 기독교적인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소설 『천로역정』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평이한 글쓰기여서 흐름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는 의미다. 내가 읽은 책은 1부만 있는 책으로 크리스천 처자의 순례를 다룬 2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내에는 1, 2부를 합본한 번역본도 있고, 어린이용 도서도 출판돼 있다.

황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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