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기적? 천만에, 연대와 협력의 유전자가 각인돼 있다
인간은 이기적? 천만에, 연대와 협력의 유전자가 각인돼 있다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3.08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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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가 재조명받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펴낸 『휴먼카인드』(인플루엔셜) 때문이다. 브레흐만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얘기는 잘못된 것이며 실은 선함이 인간의 진짜 본성이라고 말한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등 동양 고전의 해묵은 논쟁은 물론 ‘사물은 본래 모두가 선하지만 인위를 거치면서 악으로 변한다’는 루소의 인성론을 다시 불러오는 듯한 주장이다.

브레흐만이 내세우는 논거는 ‘이기적 유전자’ ‘루시퍼 이펙트’ ‘방관자 효과’ 등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말하는 연구 결과와 이론들을 철저히 재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폭력성을 증명해낸 듯한 여러 실험과 사건들은 사실 오류와 모순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다. 이 실험의 결론은 일반인도 부정적인 환경에 놓이면 괴물이 된다는 것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18명의 대학생을 각각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게 했는데, 이들이 서로에게 가혹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하면서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실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한다. 피험자들이 실험자의 실험 의도와 목적을 미리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2001년 영국 BBC에서 재현된 같은 방식의 실험 또한 반박의 논거로 차용된다. 일명 BBC 감옥실험에서는 참가자가 가혹행위를 주저하고 수감자에게 압도당하는 등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방관자 효과’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곁에서 지켜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살해당한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뉴욕타임스>가 당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방관자들을 집중 보도하고, 심리학에서 관련 개념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저자는 제노비스의 죽음에 관한 사실도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제노비스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듣고 즉각 달려온 이웃의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반박한다. 또 방관자 효과를 다룬 105건의 메타분석에 따라 위기의 순간 목격자들 간에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역 방관자 효과’도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실험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아가 반전의 예를 드는 이유는 인간 내면의 선한 본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그간 ‘성선설’과 ‘성악설’로 양분되는 인간 본성에 관한 논의는 최근 들어 후자의 견해가 우위를 점했다. 이는 주류 심리학과 정치학의 논거들로 차용되면서 인간의 내재적 동기를 의심받는 것은 물론 시민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다.

책은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나 리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등의 저서들과 궤를 같이한다. 스티븐 핑거가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를 인간의 폭력성에만 국한해서 바라보는 견해를 비판했다면, 리베카 솔닛은 여러 사례를 통해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시민들의 연대에 주목했다. 브레흐만 또한 인간 본성에 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그는 현생 인류를 ‘호모 퍼피’라고 부른다. 타인에게 우호적으로 보이도록 진화해온 외모가 현생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생존한 호모 사피엔스의 승리 요인을 ‘상상력의 결과물에 대한 공유’로 꼽았다면 브레흐만은 ‘타인에 대한 우호적인 본성’을 얘기한다. 인류는 타인과 협력하고 공감하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해왔다는 그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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