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기억의 전쟁’이라는 글자가 사라지면, 누군가의 영정 사진과 그것을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등장합니다. 이질적인 두 숏이 몽타주 될 때,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죽음을 기억 속에 끝까지 간직하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고요한 횃불처럼 타오릅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길보라의 <기억의 전쟁>입니다.
역사의 피해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자주 관객의 길을 잃게 하고, 무력한 방관자로 전락시킵니다. 그 이유는 영화가 ‘연대’가 아닌 ‘연민’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에요. 상처의 크기와 깊이에 천착하다 보니 피해자들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이해와 질문이 결여돼 있는 거지요. “이것 봐. 정말 안타깝지?”라는 의뭉스러운 물음과 욕망이 깃든 이미지들이 무작위로 나열될 때, 관객이 영화에 개입할 공간은 매우 협소해집니다.
<기억의 전쟁>은 피해를 증명하고 경쟁하는 영화로부터 벗어나 있어요. 다시 말해, 피해자들 중 누가 더 참혹한 상처를 입었는지 대결시키지 않고, 그들을 연약하고 무결한 존재로 정형화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영화는 피해자가 전쟁 이후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윤리적인 태도로 보듬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 이후의 시간이며, 그 고통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아는 거지요.
책 『기억·서사』(소명출판)의 저자 오카마리는 “사건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만 사건 속에 잉여로 존재하는 표상 불가능한 사건의 존재를 지시할 수 있고, 그것을 전이시킬 수 있다”며 “사건의 기억은 어떻게 해서든지 타자. 즉, 사건의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집단적 기억. 역사의 언설을 구성하는 것은 사건을 체험하지 않은 살아남은 자들. 타자들”이기 때문이죠.
<기억의 전쟁>은 고통의 규모가 아닌 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사건 외부에 있는 사람들(창작자 혹은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끊임없이 호명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면서 왜 사건의 당사자들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갇혀 수인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하면 잔혹한 폭력과 참상의 이미지로 점철된 ‘기억의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지와 같은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어요.
그 물음은 피해자의 고민과 불안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다큐멘터리 특유의 터치감을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연출로 구체화됩니다. 어떤 장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실주의적 재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순간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이 영화의 촬영을 담당한 곽소진의 말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촬영에서의 적절한 거리감과 대안적 차원에서의 시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기억의 전쟁 :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 274쪽, 북하우스)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창작자의 윤리적 태도로부터 기인합니다.
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창작자가 특정 장면에서 자신의 존재를 노출함으로써 스크린 속 주인공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이 과정에서 내화면과 외화면을 구분하는 프레임의 경계가 무너지며 새로운 영화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연출 방식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의 전쟁>은 사건의 당사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교감에 의해 발생하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주입함으로써 광의의 협업 혹은 연대적 실천이라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이미지는 탄 아주머니의 손자가 카메라를 보고 웃거나 걸어오는 장면, 농인인 껌 아저씨가 한국군이 돈을 주고 베트남의 젊은 여자들과 성관계 했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화면 바깥에 있는 촬영 감독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이 두 장면은 곽소진의 지적대로 “고정된 시선의 주체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끊임없이 흔들어놓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미지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카메라로 담는 행위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자체로 딜레마를 껴안은 작업이에요. 특히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타인의 고통은 창작자의 순수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전시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에 놓여있습니다. 결국 타인의 고통을 다루려는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자세란 공감과 연민을 넘은 통감과 연대의 태도일 테지요. 좋은 태도는 좋은 연결을 만듭니다. <기억의 전쟁>은 그런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