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어린이들은 소원을 빈다. 뭐든 자신이 한번 해보겠다며 의지가 넘치는 아이더라도 소원은 있는 경우가 많다. 소원이라는 건 내가 가진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으니, 초월적 존재에게 원하는 것을 부탁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소원이 실현되는 상상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조그마한 손을 모아 간곡히 빌곤 한다. 달님에게, 샛별에게, 지나가는 별똥별에게.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의 주인공 ‘찰리’는 4학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소원을 빌었다. 더군다나 소원을 비는 조건도 다양하다. 시계가 11시 11분을 가리키는 걸 본다든가 진흙 속에서 반짝이는 1센트짜리 동전을 발견했다든가 하면 소원을 빌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고 믿는다. 찰리의 소원이 여러 개일 법도 하지만 오히려 소원은 단 하나다.
찰리의 소원은 가족이다. 아빠는 싸움으로 교도소에 들어갔고, 엄마는 정신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찰리 곁에는 있어줄 사람이 없다. 사회복지사는 찰리에게 ”안정적인 가정환경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하고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모와 이모부의 집에 보낸다. 다정한 이모 부부 그리고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하워드가 찰리를 따뜻하게 대해주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가족들이 즐비한 교회에서의 찰리의 감정은 더욱 휘몰아친다.
한 마리의 개가 찰리의 눈에 들어온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털에 진드기가 우글거릴 수도 있는 떠돌이 개다. 찰리와 하워드는 그 개에게 ‘위시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찰리는 ‘위시본’을 진짜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위시본을 맞이하는 것은 더는 소원의 영역이 아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은 찰리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지만, 위시본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다.
찰리에게만 소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모와 하워드에게도 소원이 있다. 특히 이야기 곳곳에서 몸이 불편한 하워드가 내뱉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소원과 관련된 이들은 서로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소원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당신과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모와 찰리의 사이를 감싸는 가운데, 소원은 별똥별보다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라는 의미에 더 가까워진다.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 이은선 옮김 | 놀 펴냄 | 272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