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blue)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의미하는 색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 ‘젊은’ ‘풋풋한’ ‘우울한’이라는 형용사로도 쓰이는데요. 그러니까 블루는 청춘의 활력과 싱그러움을 나타내고, 청춘의 내면에서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절한 곡조의 블루스(Blues)와 피카소의 청색시대(靑色時代 : 하층민의 삶을 캔버스에 담은 피카소의 작품 경향을 이르는 말) 그리고 퀴어 영화에 유독 푸른빛이 짙게 일렁이는 이유 역시 블루가 발산하는 ‘우울한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퀴어 영화와 블루의 ‘기묘한 동거’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1997), 변성현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2016),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배리 젠킨스의 <문라이트>(2017),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2019),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2020)는 모두 푸른빛을 인상적으로 사용한 퀴어 영화들입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은 아예 제목에 블루를 새겨 넣은 퀴어 영화이지요.
또한 퀴어 영화는 푸른 바다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썸머 85>에서 알렉스와 다비드가 처음 만날 때, <문라이트>에서 샤이론이 후안, 케빈과 함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나눌 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만나러 갈 때, 모두 바다가 배경으로 등장하지요. 이때 바다는 블루의 이중적 의미처럼, 주인공들을 구원하는 동시에 그들의 존재론적 고난을 은유하는 공간입니다.
블루는 퀴어 영화의 도상(icon)이기도 합니다. <불한당>의 재호와 현수는 파란색 정장을 즐겨 입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엠마는 파란색 머리를 하고 있으며. <문라이트>의 샤이론은 늘 파란 가방을 매고 있죠. 이어 영화는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라는 대사를 통해 블루의 색감을 영화의 전반적 정서와 마침맞게 녹여냅니다. 참,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2019)의 윤희도 파란 코트를 즐겨 입었지요.
이처럼 퀴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블루의 이중적인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며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책 『온 컬러』의 저자 데이비드 스콧 카스탄의 논의처럼, 블루는 자극적이고(blue movies : 도색 영화) 제멋대로면서(talk a blue streak : 마구 지껄이다) 기쁘고(my blue heaven : 파란 천국), 만족스럽지만(blue ribbons : 최우수) 그럼에도 실망스럽고 좌절스러울 때가(blue balls :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함) 많은 색상입니다.
이러한 블루의 다각적인 교차성은 단일한 의미와 장르로 수렴하지 않는 퀴어 영화를, 세상의 편견과 구속에 신음하는 퀴어의 존재를 명징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설명해냅니다. 아무래도 퀴어 영화란 파란색 도화지에 펼쳐진 이상한(queer) 세계인 것만 같습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