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수용소 시대... 봄을 보는 법
팬데믹 수용소 시대... 봄을 보는 법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2.16 08: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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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봄. 겨우내 마음 벽에 달라붙은 살얼음을 녹이는 따스함이 묻어나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마치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을 만났는데. 거대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마음껏 안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라는 수용소에 갇혀 규율(방역수칙)을 강요받다 보면 봄을 제대로 맞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지난해 봄(입춘: 2월 4일) 16명이었던 코로나 확진자는 올해 봄(2월 3일) 누적 인원 7만8,508명을 기록했다. 일기예보처럼 매일같이 전해져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확진자 수 발표 이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는데, 실제로 지금껏 1,500여명이 코로나에 목숨을 잃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그 수치는 참혹할 정도이다. 첨단 과학·의학 기술을 자랑하는 21세기라고 하지만, 역병 앞에 인류는 무력했다. 내가 조심한다고 되는 문제만도 아니었다. 사회와의 접촉을 최소화한다지만, 코로나 균이 언제 틈입해 화를 초래할지 모를 일이었기에, 누구나 접촉자, 감염자,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숨죽여야 했다. 죽음도 두렵지만, 방역수칙에 따라 언제고 내 사생활(거주지 및 이동 경로)이 공개돼 조리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공포심을 자아냈다.

코로나 블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집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고, 문화생활도 사실상 중단된 데다, 경제 활동마저 최소한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을 강요받고, 이 모든 사항을 준수한다 해도 5인 이상 모일 수 없는 코로나19 수용소 생활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실제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 실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2020년 3월 17일부터 3월 30일까지 전국 시도 별 1,014명 대상)에 따르면 우울 위험군은 2018년 3.8%에서 지난해 22.1%로 급증했다. 지난해 1~8월 월평균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상담 건수 역시 월 1만6,457건으로, 2019년의 같은 기간보다(월 9,217건) 78.6% 높아졌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에 따르면 올해 1월 우울증 지수는 7.91점으로 지난해 6월 6.75점보다 높았다.

코로나 수용소를 과거 아우슈비츠와 비교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 수감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유사한 면이 많다. 1942년~1945년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다가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점차 주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분노와 무기력, 혐오감을 표출하는데 이건 코로나19를 대하는 현대인의 반응과도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코로나의 등장에 충격을, 마스크 착용과 위생관리 외에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 무력하고 예민해진 나머지 자신과 타인을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오늘날의 현실과 일정 부분 겹쳐 보인다. 전문가들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이나 남을 비난하면서 상황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느낌으로써 불안감을 달랠 수 있다”(책 『홀로서기 심리학』 中)고 생각한 이유가 크다고 진단한다.

이처럼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온통 불확실성 투성이다. 그나마 유일한 통제 가능 영역을 꼽자면 마음 관리다. 실제로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 다수가 마음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마음을 관리했을까. 조금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삶의 의미를 탐구한 끝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입소 당시 빼앗긴 과학책 원고 완성을 삶의 의미로 삼았다.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어떻든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그는 원고 완성의 일념으로 무기력과 불안에서 벗어날 ‘긴장감’을 만들어내 고된 수용소 생활을 견뎌냈다. 긴장감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다만 프랭클은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프랭클에게 과학책 원고가 삶의 의미였듯,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과학책 원고(각자가 추구하는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고, 그 발견을 통해 삶의 긴장을 유지한다면 코로나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내리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인지 심리학자인 박경숙씨도 저서 『문제는 무기력이다』에서 “그 어떤 곳에서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혹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도 영적 자유와 마음의 독립성을 보존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란 혹독한 운명에 대처할 방법을 선택하는 자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막연한 낙관론을 펼치라는 건 아니다. 놀랍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낙관론을 펼치던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 빅터 플랭크는 그들을 ‘집행유예 망상’(나는 괜찮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자로 구분하는데, 그들은 곧 풀려날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으로 처음에는 누구보다 잘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석방될 거야’ ‘내년에는 풀려날 거야’ 등의 기대가 어긋나) 실망이 거듭될수록 급격히 무너져내리면서 끝내 삶의 의욕을 저버리는 최악의 결과와 마주했다. “따뜻한 여름이 오면 코로나가 잠잠해지겠지” “조금만 버티면 나아지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 걸리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보급돼도 코로나 종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다”와 같이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코로나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비록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음)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춘래사춘(春來似春: 봄 다운 봄이 옴)은 요원한 일이 아니다. 비록 코로나 상황은 통제 불가한 면이 많지만, 마음 관리는 다른 문제다.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아우슈비츠에서조차 마음의 자유만큼은 허용됐고, 실제로 마음을 잘 지킨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코로나 수용소에서의 생존, 그건 온전히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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