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해프닝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담뱃값 인상 해프닝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2.03 09:03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담배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조선 광해군 시절인 1616년으로 알려진다.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는데, 그 확산세가 어찌나 컸던지 『조선왕조실록』은 “신유(1621)·임술(1622) 이래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와 술을 담배로 대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1890년대 중반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 언더우드 여사 역시 “나는 그들(궁녀)이 모두 담배를 피는 것에 놀랐으며 그들은 내가 담배를 피지 않는 것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조선은 ‘골초 국가’로 유명했고, 그건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6년 성인(19세 이상) 흡연율은 23.9%로,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세계 평균 흡연율 20%(15세 이상)를 웃돌고 있다. 최근 흡연자가 줄고 있는 추세지만, 국내 흡연자 비중은 여전히 전 세계 평균 이상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성인 남성 흡연자 비율은 36.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7일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브리핑하면서 “금연환경 조성을 위해 담배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 인상, 광고 없는 담뱃값 도입 등 가격, 비가격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인상폭과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담뱃값은 7달러지만 우리는 4달러 정도로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것은 정책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실제 2018년 기준 각각 36.7%, 7.5%인 성인남녀 흡연율을 2030년 각각 25%, 4%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다. 언론들은 즉각 “정부, 담배값 인상 검토” “‘담뱃값 인하 믿었는데... 흡연자들 ‘결국 서민 쥐어짜기’”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담뱃값 인상이 주요 뉴스로 오르내렸고, 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정부는 언론이 정부 정책을 성급하게 해석해 마치 금방이라도 담뱃값을 올리려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브리핑 과정에서 “오늘 발표한 계획은 10년간 계획이며 현재는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만큼 올릴지 정하지 않았다. 10년간 상황을 봐가며 구체적 시기와 부담 폭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 담뱃값 인상 파동을 겪었던 국민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통해 “담배는 서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는 도구이기도 한데, 그것을 (2015년 담뱃값 인상으로) 박근혜 정권이 빼앗아갔습니다. 담뱃값을 이렇게 한꺼번에 인상한 건 서민 경제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굉장한 횡포”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흡연율만 놓고 따지자면 담뱃값 인상은 일정부분 효과가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2,500원이던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서 담배 판매량은 15.1%(「2020년도 1~3분기 담배 시장 동향」) 감소했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입힌다는 점이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담배를 포기하지 않는 건 그만큼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는 효과가 크다는 방증이다. 하물며 지금은 코로나로 서민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담뱃값 부담으로 담배를 끊는 이도 있지만, 부담을 짊어지고서라도 흡연을 계속한다면 서민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보건당국이 담배를 대체할 대안을 마련해주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가격 인상을 강행한다면 세수를 늘리기 위한 꼼수 정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2015년 담뱃값 인상 이후 이듬해 담배 제세부담금 수익이 67.1% 증가했는데, 이는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겉으로는 국민건강을 위한 조처라고 하지만, 실상은 세수 증대를 위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여론이 싸늘해지자 정세균 총리는 SNS를 통해 “담배 가격 인상 및 술의 건강증진부담금 부과에 대해 현재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으며 추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담뱃값 인상은 이번 정부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흡연자들의 뒷맛은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정부 말대로 담뱃값을 10년 내 OECD 수준으로 높여 금연율을 낮추는 게 목표라면 마땅히 추가 세수를 ‘흡연자의 비흡연자화’에 어떻게 활용한 지에 관한 구체적 방안부터 먼저 내놓는 게 순서이다. 국민 건강증진과 세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찔끔찔끔 애드벌룬을 띄우면서 여론 동향을 살피는 것은 서민을 맨 앞에 내세우며 공정과 정의를 얘기하는 문재인 정부답지 못하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