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힐링’의 적(敵)은 ‘부담’
[칼럼] ‘힐링’의 적(敵)은 ‘부담’
  • 독서신문
  • 승인 2021.02.0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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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홍 발행인.
방재홍 발행인.

[독서신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구처럼 인간은 부름을 받고 또 불러줌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양각한다. 그런데 이왕이면 더 중요한 일로, 더 자주 부름을 받았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오늘날 그런 호명(呼名)의 바람 속에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기대 충족의 병(病)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일본으로선 불모지와 같았던 육상 종목에서 동메달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쓰부라야 고치키. 그는 막판까지 영국의 베이질 히틀리와 경쟁하다 뒤처져 아쉽게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육상 부문에서 일본인의 메달 획득이란) 신기록 달성 소식에 일본 열도는 들썩였다. 쓰부라야 고치키가 국민 영웅에 등극한 건 두말할 것 없는 사실. 다만 그런 응원은 쓰부라야 고치키에게 ‘다음 경기에 금메달로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용했고, 이후 쓰부라야 고치키는 파혼을 감수하면서까지 훈련에 매진했으나, 끝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1968년 1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아버님, 어머님. 고치키는 이제 너무 피곤해 달릴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프랑스의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는 버터와 크림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조리법으로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했지만, 오히려 그 별이 화근이 돼, 정상의 자리를 잃을 것을 염려하다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내에서도 성적이나 실적 압박에 의한 자살률이 상당한 수준인데, 「2016년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살 충동 원인 중 성적 비관이 40.7%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자신 혹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충동에 내몰린 것인데, 실제로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기대 부응을 유지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에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 어느 직장인은 “매달 실적 회의를 위해 본사에 갈 때면 타고 가는 기차가 전복돼 회의에 불참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 같다”는 고백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기대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악성 세포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몸이 축나거나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는 경우가 빈번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큰 부담이 되는 일을 앞두고는 컨디션 난조를 보이거나, 다치는 경우가 빈번한데,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자기 불구화 전략’이라 명명한다. ‘상처를 입었으니 이기지 못하겠구나’라는 핑곗거리를 자신과 주변인에게 알리면서 주변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인데, 별것 아닌 부상에도 과도하게 반창고를 붙인 운동선수의 심리도 이런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비단 유명인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저마다의 반창고로 ‘저한테 기대하지 마세요’란 무엇의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그런 주변의 기대에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개 이런 종류의 기대 충족 욕구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망각하려 할수록 더 자주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했을 때 오히려 더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그런 이유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저자 오타 하지메는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라는 의식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한 그 불안을 제거하려 할수록 마치 개미지옥처럼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며 “‘인정받고 싶다’라는 욕구가 영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거꾸로 인정 욕구의 강박에 쫓길 (수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균은 “‘내가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에너지를 일으킨다. 이 방법은 꽤나 중독성이 있(다. 하지만) 자존감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평가가 아닌 ‘자신의 평가’에 집중해야 한다”며 “해답은 과정에 있다. 과정에 몰입하면 된다. 평가는 나중의 일이고 과정은 현재의 일이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건 결국 오늘 할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일이다”라고 조언한다.

혹 이런 조언이 심리학 서적에 자주 등장하는 ‘이론 지식’처럼 느껴지는가? 정신의학박사 윤홍균은 “심리학책만 읽은 사람은 몸짱 트레이닝 교본만 읽은 것과 같다. 트레이닝 교본은 몸이 망가진 이유를 알려주고, 근육 만드는 방법도 알려준다. 하지만 실천이 없는 이론은 지식에 불과하다. 몸짱이 되려면 직접 땀을 흘리고 근육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다. (중략) 자존감도 그렇다. 심리학책만 읽어서는 ‘내가 헬스책 엄청 읽었는데 살이 안 빠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힐링을 원하는가? 작은 실천을 통해 지식을 지혜로 만들고, 이를 통해 대인 관계의 기초체력이 되는 ‘자존감’을 쌓아보자. 나를 향한 호명의 목적이 인정(認定)일지 이용(利用)일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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