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야 할 소중한 것들
나누어야 할 소중한 것들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1.02.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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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퇴계 이황의 수신 십훈(修身十訓) 덕목인 독서를 실행하기 좋은 이즈막이다. 그러나 우매해 입지(立志), 경신(敬身), 치심(治心), 발언(發言), 제행(制行), 거가(居家) 등의 ‘수신 십훈’에서 독서만 제대로 실천해 온 듯하다. 이렇듯 책 읽기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적부터 동화책에 심취해 온 습관에 의해서다. 어린 시절 누렇게 빛이 바랜 갱지에 적힌 동화 내용은 나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도록 이끌었다. 이런 연유로 독서는 그동안 일상화 되다시피 했다.

어떤 내용의 책이든 한권의 책은 소중한 물품으로 자리 한지 오래다. 이 때문인지 우리 집 살림 중 책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 천권의 책이 집 안 서재에 진열돼 있지만 요즘도 신간, 중고 책 가리지 않고 책 구입을 망설이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책을 향한 나의 애정은 지나친 면도 없잖아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온 서점을 뒤져서라도 구입해 읽는 게 그것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위에선 책벌레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한다. 하지만 책에 대한 사랑은 깊을수록 유익하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밑바탕이 돼야하듯, 아름다운 애착 배면(背面)엔 진정으로 흠모하는 마음이 깃들어야 한다. 이로보아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병적인 집착이 아닌, 경이로운 시선이 전부다. 

어느 날 우연히 어느 여인에게 나의 글이 수록된 문예지 한권을 건네준 적 있다. 그 후,  내가 잔뜩 끌어안고 지내온 아까운 것들을 하나, 둘 이웃에게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받아든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문학에 뜻을 품었으나 삶에 떠밀려 지금껏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건네준 문예지를 읽은 후, 자신도 글을 써볼 용기가 샘솟았다는 것이다. 한권의 책은 이렇듯 누군가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주기도 한다.

타인에게 선물을 주거나, 받을 때 우린 흔히 물건의 가치나 가격을 놓고 눈 저울질하기 예사다. 허나 책 선물만큼은 이런 고민에 빠질 필요가 없다. 양서 한권은 그 어떤 물질로도 채울 수 없는 보배로움을 지녔잖은가. 한권의 책 속에 담긴 지식, 상식, 교양, 정보, 교훈 등을 어찌 몇 푼의 돈으로 환산 할 수 있으랴.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한권의 책은 다시금 내 자신을 깊이 응시할 수 있는 힘을 배가(倍加) 시키고도 남음 있었다. 고도원이 지은 『배려』가 그 책이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은 현명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이 책의 핵심어는 ‘배려’와 ‘나눔’이다. 남에게 베푼 배려가 행복과 성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표현에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내용에 걸맞는 일을 어려서 겪었기 때문이다. 

어린 날 아버지의 부재로 생계를 위협 받은 적 있다. 이에 어머니는 자식들 양육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서울 중량천 뚝 위에서 호떡을 구워 팔기에 이르렀다. 동장군이 찾아온 혹한에 어머닌 언 발을 구르며 호떡을 구웠으나 경험 부족인지 장사가 신통치 않았다. 어느 때는 호떡을 몇 개 팔지 못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어머닌 손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견디기 힘든 것은 곁에서 붕어빵을 파는 두 내외의 비인간적인 텃세였다. 이들은 어머니께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으며, 시비를 걸어오고 훼방을 놓곤 했다. 호떡 기계가 얹힌 무거운 손수레는 어머니 혼자 끌고 집으로 돌아오기엔 힘에 부쳤다. 하여 어머닌 노점 장소에 놔두고 왔다. 이때 호떡 굽는 화덕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오면 불이 잘 붙은 연탄에 물을 부어서 꺼트리기 다반사였다. 또한 손수레 위 집기류도 몰래 가져다 버리곤 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이었다. 만삭이었던 붕어빵 장수 아내가 그날따라 혼자서 붕어빵을 팔았다. 그때 그녀는 갑자기 산통을 느껴 길바닥에서 아이를 출산할 뻔했다. 이 때 어머닌 당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황급히 벗어 산모를 보호했다. 그리고 어머닌 택시를 불러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택시 안에서 그만 아기를 출산 하게 돼 얼결에 어머니가 아기를 받았단다. 비록 그 두 내외는 평소 소소한 이익에 얽혀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만 인정 많은 어머닌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품었던 것이다.

그 후 그 두 내외는 더 이상 어떤 심술도 부리지 않았고 그날의 일로 평생의 은인처럼 어머니를 대했다. 이십 여 년 후, 어느 날 군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때 태어났던 아기가 자신이란다. 당시 청년을 반갑게 맞이했던 어머닌 요즘도 간간히 그 때 일을 떠올리며 행복해 한다. 만약 그 때, 어머니가 산모를 외면했더라면 그 청년이 어렵사리 수소문까지 해 어머니를 찾아왔을까 싶다. 이로보아 사람은 남다른 능력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행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배려는 감동과 정을 재래(齎來)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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