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언젠가 지금 우리의 나이가 되어 일하면서도 “여자인 내가 너무 나이 들어서까지 일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희망한다. (중략) 계속해주세요. 거기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시야 안에 머물러주세요. - 이다혜 작가, 책 『출근길의 주문』 中
‘여성’이라는 존재 앞에 특별히 ‘일하는’이라는 수사가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여전히 ‘일하는 여성’이 우리 사회에 희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라 불리는 50~60대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다. 일자리를 갖더라도 임신 혹은 육아 등의 이유로 때가 되면 알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자식의 삶으로 귀속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집안일’이나 하는 ‘안사람’으로 취급했다.
지난해 출간돼 일터의 여성들에게 유용한 삶의 지침을 선사한 책 『출근길의 주문』(한겨레출판)의 저자이자 <씨네21> 기자 이다혜는 “책임지는 자리에 여성들이 많이 도달해야 다른 여성들을 능력에 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그것이 광의의 협업”이라고 말한다. 최근 저자는 ‘광의의 협업’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바로 『내일을 위한 내 일』(창비)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이다.
저자는 불확실한 ‘내일’(tomorrow)에 움츠러들지 않고, 확실한 ‘내 일’(my job)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앞서 걷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에는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를 쌓아올린 여성들의 일과 직업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저자는 “동시대에 한창 일하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들과 다른 직종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일의 성격이나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이 비슷하거나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리라 믿는다”며 “처음 일을 구하는 사람이든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려는 사람이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로부터 힌트를 얻기 바란다”고 말한다.
꿈은 분명하지만 나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윤가은 감독은 “못 하겠다는 생각은 서랍 속에 넣어 두고” 장담할 수 없는 결과 대신 과정에 책임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또 노력한 만큼 성장하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는 이들에게 배구 선수 양효진은 “내가 작아지는 느낌을 겪고, 저 선수보다는 못 미친다 해도 그 사실을 인정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 냈다며 “오늘의 ‘열심’이 내일의 ‘경력’이 된다”고 말한다.
자기 삶의 단독자로 우뚝 선 90년대생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묶은 책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한겨레출판) 역시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의 저자이자 <마리끌레르>의 피처 에디터 유선애는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내일로 힘차게 걸어가는 여성들의 삶을 섬세하고 따뜻한 문체로 전한다. 이 책에는 뮤지션 예지, 비디오그래퍼 정다운, 배우 이주영, 영화감독 이길보라, 작가 이슬아, 국가대표선수 김원경, 모델 박서희 등 지금의 20~30대 여성들이 열렬히 사랑하고 지지하는 여성들의 삶과 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특히 이 책은 성별이나 세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며, 각자의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나아가 저자는 “생존은 어느 세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내가 만난 90년대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존의 의미가 달랐다”며 “‘되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목표”라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저자 말처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각자의 미감과 세계관, 도덕적 기준과 윤리를 양보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결국 핵심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로서 존재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보할 수 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랫동안 일하는 여성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당연하고 흔한 존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