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힐링은 일상 속에 있다
‘진짜’ 힐링은 일상 속에 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1.21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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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이 된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가장 소중한 것이 가장 큰 슬픔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이 그러한데, 가족은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을 늘 비슷한 무게로 선사하며, 나의 세상에 폭력과 안전을 동시에 구축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2004년에 개봉한 그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이다.

이 영화는 1988년 도쿄 지역에서 발생한 ‘어린이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건의 개요를 요약하자면, 장남의 아빠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사라져버렸고, 나머지 동생들의 ‘아빠들’ 또한 행방이 묘연하다. 자택출산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 중 아무도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고, 엄마는 또 다른 남성과 살겠다고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간다. 그 과정에서 셋째가 영양실조와 폭행으로 비참하게 죽어버린다.

“방치된 6개월 동안 그들이 본 풍경은 잿빛 ‘지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의 생활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어떤 ‘풍요로움’이 존재했을 테고, 남매들 사이의 감정 공유가, 기쁨과 슬픔이,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성장과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 밖에서 ‘지옥’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전기가 끊어진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했을 ‘풍요로움’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상실됐는지를 상상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이 암담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온 고레에다는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위와 같이 술회한다. 감독의 의도대로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의 선정성을 최대한 걷어내고, 참혹한 순간에도 삶을 이어가려는 아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 역시 아이들의 곤궁한 일상을 자극적으로 전시하거나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고, 그들의 곁을 그저 말없이 동행한다.

논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치유의 가족에 내재된 ‘영속성(永續性)’에 관한 연구」의 저자 송선호는 “개인의 책임 유무와 상관없이 저마다 각기 다른 문제들로 해체된 가족과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고레에다는 과장 없이 담아낸다.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책임을 강요하고, 자유를 억압하기도 하는 것이 가족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이 고레에다에게는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 즉 소우주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아무도 모른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동생들을 돌보는 장남 ‘아키라’의 걷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아키라는 동생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에 가서 음식을 구하고, 엄마의 전 애인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카메라는 그 과정에서 아키라가 집을 나오고, 다시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꼭 포착한다. 영화의 경제적인 화법을 고려한다면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장면인데 말이다.

아키라의 걷는 모습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이 너무나 짐스럽고, 일상이 미치게 버거워도 저렇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대다수의 삶이다. 그러니 일상에서의 치유 혹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온함은 산타 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게 아니다. 진짜 치유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불현듯 찾아오는 무엇이다.

고레에다는 “만약 제 영화에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책 『오늘, 행복을 쓰다』의 저자 김정민 역시 “현재도, 미래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데 있다. 삶의 진실한 경험은 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루하게 반복하는, 남루한 일상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단하고 아픈 삶을 치유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 역시 지금 여기,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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