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갑갑한 현실 속에서 쌓아올린 멀고도 가까운 미래, 『5년 후』
[리뷰] 갑갑한 현실 속에서 쌓아올린 멀고도 가까운 미래, 『5년 후』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1.19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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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지자 소설 속 정부는 묘안을 내놓는다. 기존의 혼인제도를 고쳐 결혼한 부부와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5년마다 결혼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결혼 갱신제를 마주하는 커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변화를 맞이한다. 아내의 의중을 알기 힘들어서 그녀가 결혼 갱신 문서에 서명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종신 결혼을 선택해야 집을 물려주겠다는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그에 순응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자친구도 있다.

그동안 돌봄노동을 전담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소설 속 사회는 숨돌릴 틈을 준다. 하지만 남성의 입장에선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해왔던 여성들이 결혼 갱신의 주도권을 잡게 되자, 혹여 결혼이 깨질까 불안해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등장한다.

국가돌봄시스템 또한 정부가 내놓는 저출생 대책 방안이다. 교실의 한 장면에서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묻는다. ‘출생률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정부가 임신 중단을 설명하고 심지어는 권하기까지 하는 것인가요’ 교사는 출생율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근본적으로 임신 주체가 가능한 한 임신과 육아로 이어지는 모든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그래서 그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작가는 결혼-임신-출산-육아라는 여성의 삶의 도식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돌봄시스템은 여성이 전담하고 있는 돌봄노동을 이제는 공동체의 역할로 전환하는 의미가 있다.

새로운 결혼 정책과 국가돌봄시스템이 시행됐다고는 하나, 시민들은 혼란을 겪는다. 특단의 조치였던 만큼 제도가 사회적 혼란을 견디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소설의 제목과 소설적 시간적 장치가 5년을 담은 이유다. 5년은 사회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다. 기혼 여성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와 판단의 시간이며 남성에게는 안정적인 결혼에 끝을 맞이할 수 있는 불안의 시간이다. 한편, 마지막 장인 ‘다시 5년 후’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5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사회의 정상 가족만을 허용하는 가족제도과 평가절하되는 돌봄노동의 가치 등을 다시 논의하기에 5년이라는 기간은 충분할 수도 있다.

『5년 후』
정여랑 지음 | 위키드위키 펴냄 | 187쪽 |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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