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정답을 알 수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책 속 명문장] 정답을 알 수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1.18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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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솜이불 밖으로 나온 두 개의 발이/ 너무 차가워서 어루만져주었다/ 여러 개의 작은 발들로 늘어났다// 방학에는 얼마든지 늦잠을 자렴/ 잃어버린 걸 찾기 전에는 눈뜨지 말렴

「겨울방학」 <10쪽>

질투는 소금에 절여놓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손을 내민다// 함께 눕자// 흰 알갱이를 가득 채운 바닥에 누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찬찬히 떠올리는데// 꼭 정어리 같잖아// 인간이 인간에게 꽉 달라붙어/ 인간에서 다른 무엇으로 발효된다

「정어리」 <18쪽>

하루에 1센티씩 자라나/ 인중을 덮는 무궁무진한 것/ 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렴// 넥타이를 푸는 남자는 근엄한 척 앉아/ 나를 길들이려 하지/ 지성은 다리를 쫙 벌려야 하는 거라면서// 역사 전문가 흉내는 집어치워/ 남자의 콧수염을 떼어내/ 내 코밑에 붙여버리지

「전격 X 작전」 <31쪽>

나는 빵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어// 빵에 든 크림은 어째서 달콤하지 않을까 유리창에 찍힌 손자국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친구가 마시고 남긴 우유는 아직까지 온전할까// 빵 조각을 아주 잘게 부스러트리면/ 알갱이들과 알갱이들 사이에 애정이 녹아들어/ 엄청 달콤할 거라 생각했는데

「단팥빵」 <59쪽>

추장의 딸은 물을 벌컥 마십니다/ 사랑을 모르는 작자는 용서할 수 없어. 폭력을 일삼는 것들과 맞서 싸울 거다./ 그러자 불도저가 뒤통수를 갈깁니다/ 이것아, 전생이 뭔 상관이냐. 지금 이생도 개판인데……. 차라리 세상에서 우리 흔적을 찾아 없애자.// 이것이 우리의 또 다른 맹세였습니다/ 사랑 없는 도시에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형상을 찾아내야 한다

「소모임」 <73쪽>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한연희 지음 | 아침달 펴냄│120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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