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 『중국의 내셔널리즘』
[책 속 명문장]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 『중국의 내셔널리즘』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1.14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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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현재 홍콩에는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홍콩민족당, 홍콩독립당 등과 같이 홍콩의 독립을 정강으로 내세우는 정당도 있다. 이렇게 자치 혹은 독립을 요구하는 것을 내셔널리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홍콩사람들은 민족적으로 한족(漢族)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중국과 홍콩은 같은 민족이다.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이것은 홍콩이 같은 민족인 중국과 빨리 통합돼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실제상황과 정반대 의미의 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가 아니며, 네이션 또한 민족의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09~110쪽>

2018년 11월 18일, 쑤저우 마라톤에서 결승점을 500여m 앞두고 중국 선수 허인리와 에티오피아 선수 아얀뚜 데미세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하고 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야 하는 극한의 시점이다. 이때 한 여성이 이 질주에 끼어들었다. 중국의 자원봉사자였다. 자원봉사자는 중국의 허 선수에게 오성홍기를 건네주려 했다. 오성홍기는 접혀서 커다란 천 뭉치로 돼 있었다. 전력을 다해 뛰고 있던 허 선수는 국기를 받지 않고 계속 달렸다. 자원봉사자도 계속 달렸지만 마라톤 선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다시 다른 자원봉사자가 코스 앞쪽에서 뛰어나와 허 선수에 같은 국기를 안겼다. 큰 국기 뭉치를 받은 허 선수는 이것을 들고 뛰다가 너무 거추장스럽고 힘들어 길에 던져버리고 뛰었다. 결국 달리는 흐름을 놓친 허인리 선수는 1위를 놓치고 말았다. 이 중계를 본 중국인들은 격앙했다. 국기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국기를 길바닥에 던질 수 있느냐” “성적이 국기보다 중요하냐”는 등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런 비난이 빗발치자 허인리는 “국기가 비에 흠뻑 젖어 있었고,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아 떨어뜨린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76쪽>

2012년 9월 15일, 산시성 시안시에서는 일제승용차를 몰던 중국인 남성을 시위대가 공격하였다. 이 남성은 시위대에게 “나도 중국인이다. 나 역시 댜오위다오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중국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시위대에 맞아 머리에 골절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고 이후 반신불수가 되었다. 9월 17일, 시위가 너무 과격해지자 중국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이성적인 행동을 촉구하면서 시위는 수그러들었다. <89쪽>

관제적인 내셔널리즘은 겉으로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견고하지 못하다. 강요와 설득으로 이루어진 내셔널리즘은 또 다른 강요와 설득을 하게 되면 다시 그쪽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내셔널리즘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보다는 국가의 힘을 저울질해 강자의 편에 붙는 습성만 길러줄 뿐이다. 청나라 말기 열강의 외국연합군이 베이징을 공격해 왔을 때 많은 중국인들이 외국군대를 도와주었다. 청나라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이민족에 나라를 넘겨주게 되었다. 또한 개개인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내셔널리즘이어야지 막연한 분위기에 편승한 열기는 분위기가 달라지면 또 다른 방향으로의 열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375~376쪽>

『중국의 내셔널리즘』
조영정 지음 | 사회사상연구원 펴냄│423쪽│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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