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했지만 학대는 없었다?... “그것도 학대예요”
방임했지만 학대는 없었다?... “그것도 학대예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1.14 0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문명사회가 동물의 세계와 다른 건 약육강식(弱肉强食) 논리가 사회규범으로 통제된다는 점이다. 동물의 세계에선 철저한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지만, 문명사회에선 강자가 약자를 ‘보호’한다. 문명사회에선 어린아이의 울음을 폭력으로 틀어막지 않고, 절대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방임’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보호자의 고의성이 있었든 없었든) 그런 기조가 흔들리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영하 12도의 한파가 몰아친 지난 8일 오후 5시 40분경, 서울 강북구의 어느 길거리에서 내복 바람의 여자아이(3세)가 행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파에 떨어서인지 아이의 바지는 똥오줌으로 범벅된 상태. 출동한 경찰은 엄마가 출근한 뒤 아이가 9시간가량 혼자 집에 있었고, 집 밖으로 혼자 나왔다가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아동학대(방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엄마와 분리해 친척 집으로 보냈다. 조사 결과 아이가 길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보름 전에도 아이가 길에서 혼자 울고 있어, 근처 편의점주가 엄마에게 전화해 데려가게 한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 아빠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운) 아이의 엄마는 잘못(방임)은 인정하면서도 학대(직접 가해) 혐의는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 차례 학대 신고에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3살 여아가 숨진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지라 사건은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틀 후인 지난 10일 이번엔 6살 여자아이가 내복 차림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어느 골목길에서 발견됐다. 아이는 행인에게 “도와달라”며 “엄마가 음식을 먹었다고 혼을 내며 집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집을 찾자 엄마는 아이가 나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이가 밥을 잘 안 먹고) 쥐포를 몰래 먹어 야단을 쳤다. 애가 어떻게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뜻 군것질만 밝히는 아이를 훈육하다 벌어진 해프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웃 주민은 “(아이에게)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항상 ‘아니, 안 먹었어요. 배고파요’”라고 말해 학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의 탐식에 부적절한 대처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수년 전 어느 아동은 새벽에 ‘마이쭈’(과일 맛 캐러멜)를 먹고 싶다고 조르다 아버지에게 얼굴과 가슴을 가격당해 사망한 바 있다. 현재 경찰은 학대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아이를 아동복지시설에 위탁했다.

위 사건들은 앞서 발생한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의 충격으로 크게 주목받긴 했지만, 방임을 아동학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대 가해자와 아동의) 분리 조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방임은 신체 학대, 정서 학대, 성 학대와 함께 아동학대로 분류되지만, 보호자의 편의에 따라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인데, 실제로 2017년 미국 괌에서는 한국인 판사, 변호사 부부가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간 사이 차량에 아이들(6살, 1살)을 방치해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한국 정서로 볼 땐, 아이를 차량에 두는 게 나름의 배려일지 모르나 좀 더 엄격한 잣대를 겨냥하는 미국의 정서로 보자면 비보호 상황에 방치하는 건 학대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방임은 직접적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지만 각종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각종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대로 구분될 수 있고, 심할 경우 사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9월 인천에서는 (적극적 방임의 의도는 없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돈을 벌기 위해) 전날부터 어머니가 집을 비워 둘만 남은 형제(10살, 8살)가 집 안에서 발생한 화재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동생이 사망하고 형은 전신 40%에 큰 화상을 입었다.

증가하던 방임 학대는 다행히 최근 들어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하는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방임 학대는 2016년 2,924건에서 2017년 2,787건, 2018년 2,604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2018년 아동학대로 사망한 29명 중 방임 9명, 신체 학대를 더한 방임 4명을 더해 총 13명이 방임으로 목숨을 잃었다.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에서 김성준 임상심리 전문가는 “학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비슷하다. 고문을 받다 보면 피해자는 옷도 못 챙기고 더러워지고 무기력해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고문 가해자는 ‘이런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는 고문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가해자인 부모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지적했다. 이어 하어영 공동 저자는 “아이의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임은 아이를 책임지는 주체의 범위에 대한 문제다. 아이를 돌보는 주체의 범위를 가족에서 이웃과 사회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만으로도 상당수의 아이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