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미스터 존스’, 시대를 초월해 오늘의 언론을 꼬집다
[송석주의 영화롭게] ‘미스터 존스’, 시대를 초월해 오늘의 언론을 꼬집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1.0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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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미스터 존스>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동물농장』은 전체주의 사상을 우화(寓話)의 형식으로 비판한 소설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독재자 스탈린 체제 아래 있었던 소련의 민낯을 통렬히 풍자한 고발문학 성격의 소설이지요. 오웰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홀로도모르’(Holodomor)의 참상을 최초로 폭로한 웨일스 출신의 기자 ‘가레스 존스’의 투철한 소명감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홀로도모르는 ‘기아’라는 뜻의 홀로도(holodo)와 ‘대규모 죽음’이란 뜻의 모르(mor)가 합쳐진 단어로, 소련의 자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적 대기근으로 수백만명이 사망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는 스탈린의 지나친 중공업 위주의 정책 때문인데요. 이 정책은 우크라이나 농업의 극심한 쇠락과 위축을 초래했습니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농민에게 나눠주었던 토지를 강탈하고 농업을 집단화하면서 생산된 곡식을 모두 수출하거나 산업화에 쏟아 부었죠.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미스터 존스>는 존스의 시선을 빌려 스탈린의 폭정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맹렬하게 고발한 영화입니다. 존스는 스탈린의 혁명자금 출처에 의혹을 품고 우크라이나에 잠입한 뒤, 목숨을 건 취재 끝에 참담한 진실을 목도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기자에게 부여된 사회적 명령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존스의 직업의식에 포커스를 맞춘 저널리즘 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징을 보입니다.

저널리즘 영화는 대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기자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모순과 구조적 폭력,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데 집중합니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지요.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알란 파큘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고발한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2016),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2018) 등이 그 예입니다.

저널리즘 영화에는 몇 가지 클리셰가 있어요. 일단 젊고 패기 넘치는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지만 고군분투 끝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취재원과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영화는 ‘진실’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달콤한 승리의 서사로 나아가게 되지요. 하지만 아그네츠카 감독은 저널리즘 영화의 클리셰를 비켜가며 진중하면서도 감각적인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미스터 존스> 스틸컷

우선 이 영화에는 주인공의 그 흔한 로맨스가 없습니다. 존스와 ‘에이다’라는 기자의 애틋한 관계맺음이 잠깐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동료 기자로서의 연대감에 더욱 가닿아 있어요. “간단하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걷어내고 한명의 의로운 저널리스트가 소련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데 주력합니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역사적 비극을 도구화하거나 그것의 심각성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스레 극의 긴장과 몰입을 높이는 효과를 거두게 되지요.

영화가 창문을 활용하는 방식 또한 매우 인상적으로 극의 입체감을 더해줍니다. 흔히 언론을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표현하는데, 책 『미디어렌즈』의 저자 에드워즈는 이 말을 비틀어 “언론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에 페인트를 칠하는 존재”라고 꼬집었어요. 이는 결국 저널리스트가 어떤 관점과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진실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역설합니다.

영화는 그것을 창문과 유리 등 여러 가지 이차프레임으로 시각화합니다. 특히 카메라는 이차프레임에 비친 피사체의 뒤집히거나 굴절된 이미지를 통해 존스의 인식적 딜레마는 물론 그와 대척점에 서있는 언론인들의 부패를 흥미롭게 프레이밍하고 있지요. 또한 이 영화의 플롯은 오웰의 『동물농장』 집필 과정과 존스의 취재기가 교차로 편집되면서 진행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데, 이처럼 감독은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이차프레임의 틀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존스가 영국에서 모스크바로 떠나는 기차 안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이차프레임의 활용과 더불어 ‘소비에트 몽타주 기법’의 잔영이 강하게 비칩니다. 1920년대 소련의 영화감독들은 장면 내의 구성이나 카메라의 움직임보다는 쇼트와 쇼트의 충돌로 인한 역동성을 중시했습니다. 영화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는 존스와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여공의 모습을 빠르게 병치함으로써 색다른 의미와 정서적 효과를 유발하는데, 영화에서 가장 시네마틱한 순간이라 할 수 있어요.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 <미스터 존스> 스틸컷

<미스터 존스>는 ‘홀로도모르’라는 역사의 비극을 경유해 스탈린의 프로파간다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는지 보여줍니다. 스탈린의 ‘구겨진 성공’ 뒤에는 바로 서방 언론의 왜곡 보도와 흰소리가 있었지요. 사실 부패한 언론의 가짜 뉴스는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까지도 세상을 병들고 어지럽게 하는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진실을 길어 올리기 위해 어둠 속에서 분전했던 존스와 같은 언론인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덜컹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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