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코로나에 외로운 성탄절... 산타가 선물로 양파튀김을?
[메리 크리스마스] 코로나에 외로운 성탄절... 산타가 선물로 양파튀김을?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26 0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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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성탄절(크리스마스)이다. 일찍이 코로나19의 한파가 몰아닥쳐 한 해 가득 하얀 마스크 눈발이 날렸지만, 이제 순수한 결정체의 진짜 그것이 내리는 시기가 도래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일인 성탄절. 코로나19로 온통 우울한 일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어김없이 다가온 성탄절은 여기저기 들뜨고 설레는 감정을 피워낸다. 누군가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 새삼 뜻깊게 느껴져서, 또 다른 누군가는 선물의 기대로, 그도 아니면 설렘의 여러 감정이 모여 이룬 들뜬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취해서... 그런 성탄 분위기에 감동과 의미를 더할 시(詩) 세 편을 소개한다.

어두운 방 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중략)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성탄절이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있는 시 「성탄제」다. 「성탄제」는 단어 하나하나에 안타깝고 애처로우면서도 풍성하게 넘치는 사랑의 온기를 알알이 내포한다. 시 속 배경은 눈발이 날리는 몹시 추운 겨울이지만, 시어(詩語)가 내포한 정서는 추위의 동통(疼痛)을 몰아내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바알간 숯불”처럼 붉게 타오를 정도. (세월의 온갖 풍파를 경험한) 할머니의 손길이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켜내는 사이, 아버지는 눈발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와 어린 것의 목숨을 살린다는 이야기는 갈라진 마음 밭에 단비를 흘려보낸다. 감동의 화룡점정은 화자가 “서러운 서른 살”을 맞은 성탄절 가까운 어느 날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 “반가운 그 옛날”의 눈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소환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산수유 붉은 알알”을 자각게 하는데, 그 소중한 기억은 또 한 해를 버틸 이유가 된다. 김종길 시인(고려대 명예교수)은 2017년 3월 아내와의 사별에 힘들어하다 숙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진다. 향년 91세.

엄마가 양파를 튀겼어. 나는 그 양파튀김이 어린이날 선물인 줄 미처 몰랐지. 그래서 맛있게 먹은 것인데. 먹고 보니 어린이날 선물이었고. 깜짝 놀란 나는 체하고 말았던 것이다. (중략)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한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법이 그렇다니까. (중략) 양파튀김이 제일 좋다고 네가 저번에 얘기했잖아? 엄마가 문을 두드렸어.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할 말은 없고. 그저 엄마가 알아주기를.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기념일인지. 엄마가 알아주기를. // 나는 신께 기도드렸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이해한대도. 엄마는 또 양파를 튀길 것이다. 최선에 최선을 다해. - 김승일 「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하는가?」

성탄절이 설레는 이유 중 하나는 선물이다. 모르고 속고, 알고도 속는 산타의 선물은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묘한 긴장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수요와 공급의 일치, 정확히는 기대치의 일치다. 다만 대개 받는 쪽의 이상(理想)은 공중에, 주는 쪽의 현실(現實)은 땅에 있기에 불일치의 괴리가 적지 않다. 거기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산타의 정체를 간파하는 연령적) 기준에도 이견이 많다. 역시 받는 쪽은 가능한 오래, 주는 쪽은 짧게 가져가기 원하기 때문. 대개 그 기준은 어린이날 선물 받는 기준과 동일하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중략)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성탄절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건 일종의 불문율이다. 해마다 성탄절에는 보기만 해도 설레는 애인, 눈빛만 봐도 통하는 친구 그도 아니면 혈연으로 엮인 가족과 함께한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교회에도 (일 년에 세 번[부활절, 성탄절, 신년] 교회를 찾는 사람을 포함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덮친 올해에는 이 모든 것이 불허(不許)됐다. 매년 북적이던 (성탄) 명소는 폐쇄됐고, 다섯명 이상으로는 (친인척이라 해도) 모일 수 없게 됐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를 차지한 코로나19. “가슴 애리는” 심정으로 “너”(코로나19 종식)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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