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파토나서 시껍했다”는 표현에서 틀린 말은?
“약속 파토나서 시껍했다”는 표현에서 틀린 말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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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지금으로부터 577년 전 이 땅에 말은 있었으나 문자가 없었다. 정확히는 조선‘말’은 있었으나, 조선‘어’가 없었다. 중국의 한자를 차용하면서 말과 글이 서로 통(通)하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에서 조선의 네 번째 임금 세종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으니)라고 통탄해하며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해 말과 글 사이에 합일(合一)을 이뤘다. 비로소 백성들은 말하는 대로 쓰고, 쓰는 대로 말하게 됐고, 임금은 세종‘대왕’이라 불리게 됐다.

순우리말인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수백 년째, 배우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한글은 한자를 빠르게 대체했으나, 언어 속에 배인 한자의 자취는 (미약하나마) 여전히 존재한다. 오랜 세월 우리말에 녹아들어 대체 불가한 입지를 굳혔기 때문인데, 그 예 중 하나가 온도를 나타낼 때 흔히 사용하는 단위 ‘섭씨’다. 한자로는 당길 섭(攝)에 성 씨(氏). 섭씨가 ‘당기는 성씨’라는 모호한 해석을 내비치는 건 그 뜻이 사람 이름이기 때문인데, 그 주인공은 섭씨온도계 눈금을 고안한 스웨덴 학자 셀시우스(Celsius)로 한자 이름은 섭이수(攝爾修).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의 저자 이명학 교수는 섭씨(성을 가진 이)가 만든 눈금이란 뜻에서 섭씨라고 부르게 됐고 ℃로 표시하게 됐다고 말한다.

화씨도 마찬가지. 화륜해(華倫海)란 한자 이름을 지닌 독일 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가 고안했다고 해서 그 성을 따 ‘화씨’라고 부르고 ℉로 표시하게 됐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양말도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복(洋服), 양주(洋酒), 양식(洋食)처럼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 앞에는 양(洋)자가 붙는데, 그런 점에서 양말은 ‘서양(洋)에서 들어온 버선(襪)’이란 뜻을 지닌다. 단순히 서양에서 들어온 신물(新物)이 아니라 기존(에 조선에서 널리 사용하던) 버선의 의미를 버무려 말을 만든 좋은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자어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염치불구’. 청렴할 염(廉), 부끄러워할 치(恥), 아니 불(不), 돌아볼 고(顧)로 염치불‘고’가 맞지만, 염치불‘구’로 잘못 사용하기 쉬운 표현이다. 같은 맥락에서 체면불‘구’도 체면불‘고’가 바른 말이다.

“오늘 약속 ‘파토’났어(취소됐어)”의 ‘파토’도 잘못된 말이다. 파투는 화투(鬪: 싸움 투)판이 파(破: 깨드릴 파)했다는 뜻으로 파‘투’났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또한 “아내한테 숨겨둔 비상금 들키는 줄 알고 ‘시껍’했어”에서 ‘시껍’은 흔히 속어로 알고 있지만, 이 역시 잘못된 한자 표현이다. 올바른 말은 ‘겁을 먹다’란 의미의 ‘(먹을)식(겁낼)겁’(食怯)이다.

귀여움을 받기 위해 일부러 하는 애교스러운 말과 행동을 지칭하는 ‘아양을 떨다’란 표현 역시 한자어에서 기인했다. 애교부릴 때 내는 ‘아이잉’ 등의 콧소리에서 비롯한 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사실은 ‘(이마)액(가릴)엄’(額掩)이란 한자어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 잡학사전』의 저자 김상규는 “액엄은 글자 그대로 ‘이마를 가린다’는 뜻이다.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지 않던 시절, 여자의 얼굴을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쓴 겨울철 나들이 모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 뒤로 ‘액엄’이 ‘아얌’으로, 다시 ‘아양’으로 바뀌었다”며 “아녀자들이 걸을 때 아양에 매달린 붉은 술과 비단 댕기가 흔들리는 모습이 남자들 눈에는 무척 매력적으로 비(췄을 것이다) 그래서 ‘아양을 떨다’가 귀염을 받으려고 하는 짓을 뜻하게 됐다”고 말한다.

한자어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글에 풍성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주차장 출구에 ‘차가 나오니 조심하세요’란 한글 문구는 ‘출차주의’란 한자로 짧게 변환이 가능하다.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의 저자 이명학 교수는 “만약 표지를 ‘한글전용’으로 바꾸려면 글자 수가 배로 늘어날 겁니다. 비용도 더 들고 가독성도 떨어질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한자어는 조어력(造語力), 즉 말을 만드는 힘과 가독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경제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한자를 한글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한자를 외래문화로 간주하고 무작정 배척하는 태도를 조심하자는 것. 이 교수는 “한자는 우리의 문자가 없던 시절 그 공백을 메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언어생활을 원활하게 한 ‘모양이 다른, 또 다른 우리 문자’(다) ‘한글’과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발전해 나갈 때 우리의 언어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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