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어오는 영화] ‘조제’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말을 걸어오는 영화] ‘조제’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12.20 0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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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 영화 <조제>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이미지의 운동성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어느 예술도 구현하지 못한 ‘시간’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에게는 언제나 시간보다 ‘공간’이 더 중요한 화두였지요. 그의 영화에서 공간은 마치 하나의 캐릭터처럼 생동합니다.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과 남산의 풍광을 인상적으로 담아낸 <최악의 하루>(2016)가 그랬고, 어느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인연의 일상을 조각이불 붙이듯 꿰맨 <더 테이블>(2017)이 그랬지요.

<조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조제’(한지민)와 ‘영석’(남주혁)의 사랑을 김종관 감독 특유의 공간감과 카메라 시선으로 아름답게 채색한 멜로드라마입니다. 특히 ‘조제의 집’에서 촬영된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관조(觀照)의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생물학적 존재처럼 호흡합니다. 이 시선이 유달리 따스한 이유는 고아로 살아온 조제와 같이 ‘버려진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고물과 빈병이 한가득 쌓여있는 ‘조제의 집’은 그녀가 말한 대로 “버려진 것들의 쉼터 같은 곳”이에요. 말하자면 <조제>는 쓰임이 다한 것들을 아끼고 보듬는 조제의 수집가적 태도와 그 모든 것을 관조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조화롭게 맞물려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카메라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조제의 시선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제가 볼 수 없는 것을 카메라가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대체로 조제의 앉은키에 맞춰진 카메라의 시선은 조제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감독의 의지의 산물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조제>가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구경거리로 전시하고 상품화했던 기존 멜로드라마의 클리셰일 것입니다.

김종관 감독, 영화 <조제> 스틸컷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몇 개월을 같이 살던 오래된 집이, 또 조제가 평생을 살아온 그 집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 김종관 감독

책 『장소와 장소상실』의 저자 에드워드 렐프에 따르면, 공간에는 ‘지각 공간’과 ‘실존 공간’이 있습니다. ‘지각 공간’은 개인의 지각으로만 직조된 ‘자아 중심적인 공간’이고, ‘실존 공간’은 공간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기억과 경험이 공존하는 ‘상호 주관적인 공간’입니다. <조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조제가 ‘지각 공간’인 자신의 집을 영석과 공유함으로써 ‘실존 공간’으로 확장해 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실존 공간’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던 소중한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지요.

조제는 영석과의 만남을 통해 ‘지각 공간’에서 벗어나 ‘실존 공간’을 경험하고, 이어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건 영석도 마찬가지예요. 영화는 ‘영석의 집’을 의도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가난한 지방대생인 그가 취업에 좌절하고 계속 누군가의 집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후 영석은 조제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녀의 집에 정착하는데, 조제와 합일을 이룬 영석은 부유하는 삶을 잠시 유예하고 그녀의 집에서 ‘실존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화의 공간 활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무화하고, 두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교감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처럼 <조제>에서 공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조제의 집’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오래된 골목, 고물상, 헌책방 등은 이 영화의 정체성과 맥이 닿아있어요. <조제>의 특징 중 하나는 카메라가 인물이 없는 공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듯이 바라본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모두 ‘버려진 것들’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해요. 그곳에 하염없이 낙하하는 눈과 비, 낙엽 등은 조제의 대사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죽고 있습니다. 조제와 영석 또한 그런 존재들이죠. 그러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소의 공간적 심상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지고 떨어지는 것들을 품는 인자한 대자연의 넓고 푸르른 땅의 기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끝에서 조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때로는 너랑 가장 먼 곳을 가고 싶었어. 그러면서도 갇혀 있고 싶었어. 우리 집에. 너랑 나랑.” “이제 괜찮아. 외롭지 않아. 네가 내 옆에 없다고 해도. 난 네가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영석과 헤어진 조제는 이제 그와 가장 먼 곳도 갈 수 없고, 집에 함께 갇혀 있을 수도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녀는 한때 사랑했던 그를, 그와의 시간을, ‘마음’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쌓아두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 영화가 관조하듯 비춘 그 무수한 공간은 어쩌면 조제의 기억과 감정으로 조각된 그녀의 ‘내면적 풍경’이자 ‘마음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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