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죽어라 했는데 남은 기억이 없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올 한해 죽어라 했는데 남은 기억이 없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03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tvN 드라마 '나의아저씨']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죽어라 뭘 하긴 한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 대한민국은 오십 년 동안 별일을 다 겪었는데, 인간 박상훈의 인생은 오십 년간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징그럽도록 먹고 싸고 먹고 싸고.”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中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렇게 푸념한다.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는 각양각색의 사건·사고로 ‘다이내믹’한 해를 보냈건만, 뒤돌아보면 당시의 ‘느낌’만 떠오를 뿐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개인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매해 연말이면 인생무상의 늪에 빠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말이다. 이럴 때 책의 시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어쩌면 세상만사 속에 숨겨진 의미가 책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올해 출간된, 올해가 가기 전 읽으면 좋은,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풀이하기 좋은 책.

올해도 정치적으로 진영 다툼이 극심했다. 보수와 진보, 때론 각 이익집단이 여러 사안을 두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선거법 개정 후 처음 치른 지난 4월 총선에선 ‘위성정당’(비례대표 득표를 위한 꼼수 정당)을 두고 정치권이 사분오열했다. 또 이후에는 ▲고(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부동산 임대차 3법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병가 특혜 논란 ▲검찰개혁 등의 사안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고 몇몇 사안은 지금도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또 지난 8월 의사 파업 사태에선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으면서 의사고시(의사 면허 취득 시험)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해 당장 내년도 의료 인력 부족 사태가 예견된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도덕·윤리보다는 힘의 논리가 우세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치적 부족주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 본성의 맥락을 읽어내는 힘을 전하는 책이다. 집단 대립과 관련해 저자 에이미 추아는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며 “내가 속한 집단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맹렬하게 나서고, 별다른 근거가 없는데도 외부인에게 징벌적인 위해를 가하려 한다. 또한 집단을 위해 희생하며 목숨을 걸기도 하고 남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군중 심리학의 창시자 귀스타브 르 봉의 말을 빌려 “집단의 일부일 때 개인은 ‘문명의 계단에서 몇 단계를 내려간다.’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개인일지 모르지만’ 집단으로 있으면 ‘즉흥성, 폭력성, 맹렬함 그리고 열정과 영웅주의 같은 원초적 존재의 특성을 갖게 된다.’ 다른 이들과 함께 집단으로 행동하는 개인은 ‘혼자 있었더라면 억제했을 본능이 굳이 억제되지 않고 표출되도록 허용하는 막강한 권력의 느낌’을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개인으로 보면 나무랄 것 없는 사람들이 특정 진영에 속할 때 왜 그리 ‘변모’하는지, 우리 사회의 진영 다툼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지를 속 시원하게 풀어내는 책이다.

이런 갈등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내홍을 더한 건 다름 아닌 가짜뉴스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품귀 현상을 빚던 지난 4·15총선 당시 어느 언론인 출신 유튜버는 정부·여당을 향한 반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북한에 지원하려고 하루 100만 장씩 마스크를 만들어 비축하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려 혼란을 부추겼다. 이 외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보고 편견에 휩싸여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다는 주장은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850명을 넘었다는 등의 내용이 사실처럼 퍼져 분열을 조장하기도 했다.

사실을 가짜뉴스로 매도한 가짜뉴스도 있었다.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은 지난 4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전했던 “(8·15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다. 살인자”란 발언에 ‘국민을 살인자로 매도했다’는 지적이 일자 “가짜뉴스다. 국민에 대해 (살인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속기록 확인 결과 살인자 발언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두고 일부 대중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와 관련해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서 제임스 볼은 “우리는 어떤 정보가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면 더 믿으려 하고, 통계보다 일화에 더 설득된다. 소셜 미디어처럼 집단 환경에서 교류할 때 더 두드러지는 태도다. 우리는 집단의 구성원임을 드러내려 하고,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공격한다”며 “(이를 일컬어)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내 믿음을 키우는 정보를 찾아 계속 간직하고,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는 가짜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언론 역할을 강조하며 “매체들은 보통 객관성과 균형을 혼동한다. 어떤 정치 캠페인이 사실과 다르거나 특정 층을 겨냥한 주장을 했을 때, 그 주장의 시비를 가르기보다는 상대 캠페인이 그 주장을 문제 삼도록 내버려 둔다. 이 경우 매체는 사실을 전하는 게 아니라 논쟁을 보도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가짜뉴스는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유포하는지, 대중은 왜 쉽게 현혹되는지, 가짜뉴스를 막기가 왜 어려운지, 올바른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위 두 책을 양질의 도서로 소개했는데, 두권이 베스트셀러(시중 서점 통계 10위권 이내) 도서냐. 그건 아니다.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란 등치는 현실 세계에선 성립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마지막 추천도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시중 베스트셀러에 거침없이 일격을 가한다.

책의 저자 한승혜는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팔던 떡볶이를 그리움과 향수에 취해 먹을 수는 있지만 그게 ‘왜’ 맛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걸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최근 몇 해간의 베스트셀러를 작심하고 비판한다. 그중에는 혜민 스님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 그 에너지로 인해 가능성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등의 내용을 두고 저자는 “보다시피 좋은 이야기다. 뻔하다는 말을 사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뻔한 이야기다. (인생의) ‘교훈’을 마음 깊이 와닿게 하려면, 복잡한 수학 공식을 증명하는 과정처럼 텍스트로서 일정한 ‘증명’이 필요(한데) 앞서 언급한 스님의 격언들은 한마디로 아주 복잡한 문제를 두고 풀이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로 숫자 몇 개만 덜렁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저자의 견해가 전체를 대변할 수 없고 저자 역시 “(빠른 답을 얻고 싶은 사람에겐) 스님의 뻔한 조언들이 직접적이고 즉결적인 답변처럼 느껴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날카로운 비평가의 등장에 반색하며 저자를 한국의 사이토 미나코(21세기 베스트셀러 40권의 성공 요인을 냉소와 풍자의 언어로 비판한 도서 『취미는 독서』의 저자)라고 치켜세웠다. 장은수 문화평론가는 “감식이 지나친 명분에 사로잡히지도, 과도한 목적의식에 노출돼 있지도 않다. 피부에 닿는 느낌만큼만, 생각이 닿는 벽만큼만 이야기하되 말을 남기지 않는 듯하다”라고 평했다.

올 한 해를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룬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읽긴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이들에게 위 도서를 추천한다. 먹고 싼 기억 위에 좋은 기억을 더함은 물론,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이전과 다른 안목을 얻을지 모를 일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