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제작이 무산되고, 개봉이 연기되는 등 올해 전 세계 극장가는 불황 중의 불황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좋은 영화가 관객들을 찾았고, 깊은 울림과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1월부터 11월 말까지, 올해 국내에 개봉한 영화 중에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 ‘BEST5’를 꼽아봤다(이하 국내 개봉순).
셀린 시아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첫 번째 영화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두 여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그려낸 레즈비언 영화다. 특히 영화는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보고, 돌아보는 시선의 이동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형상을 다각도로 탐구한다. 영화의 인기로 감독의 전작들인 <워터 릴리스>(2007) <톰보이>(2011)와 <걸후드>(2014)가 차례로 국내에 개봉해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감독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자비에 돌란, <마티아스와 막심>
두 번째 영화는 자비에 돌란 감독의 <마티아스와 막심>이다. 절친한 친구사이인 두 남성은 우연히 친구 동생의 영화에 출연해 키스를 하게 되고, 카메라는 우연한 키스로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두 남성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특히 이 영화는 이차프레임(프레임 안의 프레임 : 창문, 유리, 거울 등)을 통해 세상의 편견에 휩싸인 동성 간의 사랑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퀴어’와 ‘성장’이라는 테마를 영화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장면에 적절하게 조응하는 음악(DYAN의 ‘Looking For Knives’를 꼭 들어보자.) 역시 훌륭한 영화.
윤단비, <남매의 여름밤>
세 번째 영화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이다. 이 영화는 여름 방학 동안 할아버지의 집에 지내게 된 두 남매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스타일이 짙게 베인 이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고, 카메라가 인물을 인위적으로 포착하는 게 아닌, 그저 거기에 함께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은 주목할 만한 가족영화의 탄생.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수상작이다.
홍상수, <도망친 여자>
네 번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다. 이 영화는 남편의 출장으로 인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한 여성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한다. 영화는 일정한 규율과 관습으로부터 탈주(脫走)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세상(남성)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버티는 주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카메라는 자신의 감정에 더없이 솔직한 여성들의 발자국을 차분하게 쫓아간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피에트로 마르첼로, <마틴 에덴>
다섯 번째 영화는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마틴 에덴>이다. 이 영화는 가난한 선박 노동자와 부잣집 딸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그린 멜로드라마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영화 운동으로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진실을 찾고자 하는 특징을 보인다.)의 터치가 두드러지는 영화로 특히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이미지가 병치된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계급과 사회, 사랑의 문제를 동시에 녹여낸 색다른 화법의 멜로드라마.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이뿐만 아니라 <작은 아씨들> <1917> <찬실이는 복도 많지> <테넷> <안티고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이상 국내 개봉순) 등의 영화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덧붙여 올해 한국영화는 여성 서사가 강세를 보였는데, 지난 10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선정한 ‘영평 10선’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가 과반(<남매의 여름밤> <도망친 여자> <윤희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 <프랑스 여자> 등 총 6편)을 차지했다. 영화가 여성과 소수자들을 중앙 무대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 신호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