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복지 대책 없나 “성냥팔이 소녀를 집으로…”
노숙인 복지 대책 없나 “성냥팔이 소녀를 집으로…”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1.30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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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이맘때면 잊고 있던 동화 하나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동화에서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외치는 소녀 사이로 사람들은 스쳐 지나간다. 성냥은 팔리지 않고, 결국 소녀는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다. 어린 시절 동화책을 덮은 우리는 성냥을 사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소녀를 연민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우리는 과연 성냥팔이 소녀를 돌보며 살고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 성냥팔이 소녀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서울의 거리를 걸어보라. 골목골목 차가운 길 위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권 활동가들은 유독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노숙인과 노숙위기계층 수가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를 지나치듯 대부분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마저도.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가운데, 이달 초 서울시가 발표한 노숙인 복지정책 예산안이 재난 이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노숙인과 노숙위기계층에게 3개월간 임시 거처의 임대료를 지원하고 있는데, 예산안에 적힌 내년도 지원 규모가 900명으로, 지난 2018년부터 4년째 동일하다는 비난이 인다.  

지난 23일 홈리스·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해 14개 단체가 참여한 ‘2020 홈리스 주거·인권팀’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임시 주거 지원 사업이 국제사회 권고를 무시한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난 2018년만 해도 서울시가 추산한 노숙인과 노숙위기계층이 1,100명이 넘는다. 이조차도 전수조사 결과가 아닌 과소추정치”라며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시장 하층의 일자리가 감소한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 지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노숙인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라고 말한다.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된 뒤에야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대처를 시작해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1992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샘 쳄베리스가 제안한 ‘주거 우선’ 전략을 언급한다. 노숙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살 곳을 제공하면 노숙인 문제는 자연히 사라진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다. 

이 전략은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실시했으며, 그 효과를 인정받아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각국에서 도입했다. 특히 지난 2006년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노숙인에게 조건 없이 주거를 제공한 결과 노숙인 대책 비용이 7분의 1로 감소했고, 노숙인들의 범법행위도 현저히 줄었다. 이에 지난 2017년 캐나다 정부는 61개 지자체로 ‘주거 우선’ 전략을 확대했다. 미국 유타주에서도 이러한 전략을 도입한 결과 지난 2004년에서 2013년 사이 노숙인 비율이 91% 감소했다.   

오랜 기간 노숙인을 위해 봉사해온 외과의사 최충언은 책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주거 문제는 노숙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기도 한다. 집이 없어서 노숙을 하지만 노숙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집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빈곤 계층 중에서 노숙인 같은 취약 계층을 위해서는 주택 제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 정책은 그들이 비노숙인의 눈에 띄지 않기만 하면 끝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서울시의회에서 노숙인 복지정책 예산안 심의를 시작했다. 내달 중순쯤 예산 편성이 확정될 예정이다. 세계 인권 선언 제25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의식주와 의료 및 필수적 사회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실업과 질병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계 곤란을 당한 경우 사회 보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35조 3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의 눈시울을 적셨던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만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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