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의 맛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의 맛
  • 스미레
  • 승인 2020.11.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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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정을 할 요량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미심쩍은 영화의 제목이라던가, 영화 내내 가스파르 울리엘의 고운 얼굴을 가리던 검댕이라던가, 전쟁 씬을 못 보는 나의 소심함이라던가. 어떤 걸 붙여봐도 그럴듯했다. <인게이지먼트>를 보고 느꼈던 묘한 고립감과 열패감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그렇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심지어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왜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멍하니‘꿀 바른 빵과 코코아’ 생각뿐이다. 이상했다. 이 멋진 영화를 보고 고작 ‘빵’ 따위를 떠올리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일 거야. 주눅이 든 채 몇 번이고 영화를 돌려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엔딩의 여운이 감기기도 전에 밀려드는 건 마넥이 전쟁터에서 간절히 원했던 음식, 꿀 바른 빵과 코코아였다. 그가 천진한 눈빛으로 ‘꿀 바른 빵과 코코아가 먹고 싶어요’라 말하던 찰나에 관해 누구라도 붙잡고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스물두 살.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시절이기는 했다.

물론 당장에라도 꿀 바른 빵과 코코아를 그려 볼 수야 있었다. 좋은 조합이지만 병사의 주린 배를 채우기엔 약해 보인다. 게다가 끈적하니 달기만 할 것 같고. 그 음식엔 대체 어떤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 마넥은 그로부터 어떤 위안을 기대했을까? 연인, 고향, 가족, 어느 순간.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붙잡고 싶을 만큼 그리운 맛에는 응당 그런 게 스며 있을 터다. 말하자면 소울 푸드. 어쩌면 한 시절의 맛. 혼자서 부지런히 퍼즐을 맞춰보며 몇 해를 났다. 코코아란 글자만 봐도 자동으로 꿀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질문은 조금 바뀐 모습으로 내 앞에 당도했다. ‘내게도 그런 음식이 있을까?’

그러니까 한 시절의 맛. 언젠가 그리워질 맛. 지금 내겐 ‘육아의 맛'이라 해도 좋을 그런 맛이 있을까 싶었다. 단연 커피가 먼저 떠올랐다. 임신과 수유를 마치고 근 2년 만에 커피와 재회하던 날을 기억한다. 호기롭게 커피를 사 들고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잠 없는 밤, 조용히 내 책 읽을 생각에 어찌나 달뜨던지. 아이가 잠들면 그렇게 한참을 사브작 대다 날이 밝아올 무렵 잠이 들었다. 좋지 않은 순환이라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가끔 누리는 그런 밤은 분명 달콤한 일탈이었다.

매일 인내심과 체력의 한계를 갱신하는 엄마들에게, 커피는 둘도 없는 아군이자 동지일 테다. 한 잔의 액체가 어쩜 이리 힘이 센지, 아이 서너 살 시절에는 몸속에 피가 아닌 커피가 찰랑대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커피 수혈'이라는 말 앞에선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나는 체질적으로 커피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머리가 핑글대고 심장이 들렁이는 것이 영 마뜩찮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며 그 체력을 따라가기 위해 기댈 곳도 커피뿐이었다. 그렇게 몇 잔의 커피가 나태함을 앗아가면, 최대치로 종종댔다. 풀가동 되었으나 쉬이 잠들 수 없는 극한의 피곤과 허무를 그쯤에서 맛보았다. '잠 없는 삶을 줄게’ 커피는 내게 달콤한 강요와 씁쓸한 위로를 동시에 건네는 존재였다.

속 쓰림과 불면이 불편해진 요즘은 커피를 선선히 줄이고 있다. 나날이 순한 차가 불어나는 찬장을 보며 커피로 인내하던 전쟁 같은 시절이 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울고 조르고 떼쓰던 아이와 부대끼며 억지로 커피를 털어 넣던 날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 반갑고도 아쉬운 양가감정이 찻잔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가만 보니, 육아는 커피와 꽤 닮아있다. 뜨겁고 달고, 쓰다.

두 번째 맛은 미역국이다. 새댁이 후루룩 끓여도 그럭저럭 맛있는 국이자 잠을 설친 새내기 엄마의 까칠한 속을 다독이던 순한 음식.

어린 날엔 눈 뜨자마자 먹는 미역국과 찹쌀밥 때문에 생일을 기다렸다. 엄마는 따끈한 미역국을 호호 불며 떠 넣는 우리를 덩실한 미소로 바라보셨다. '생일상에 오른 미역국을 다 먹어야 생일 주인공이 건강하다'는 말을 우리 가족은 굳게 믿었다. 하여 아무리 바쁘거나 배가 부른 날에도 생일상에 오른 미역국만은 남김없이 먹곤 했다. 서로를 향한 예의이자 기도처럼.

아이를 낳고는 조리원 방침대로 매끼 미역국을 먹었다. 모유의 질과 양을 높여준다는데, 사실 나는 입맛에 맞아 그저 즐겁게 먹었다. 미역의 요오드 성분을 너무 먹어도 안 좋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였으니까. 집에 와서도 한동안 미역국이었다. 맛있고 끓이기 쉽고 몸에도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빨리 먹을 수 있어서'였다.

찬밥 한 덩이를 뜨거운 국에 말아 훌훌 넘기면 허하다 못해 회가 동하는 뱃속이 금세 따뜻하게 가라앉았다. 입안이 데이든 말든, 엉거주춤 부엌에 서서 미역국 한 그릇을 마시듯 먹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아이에게서 떼지 못했고 입은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느라 두 배로 바빴다. 더러는 잠든 아이를 업고 있기도 했다. 우는 아이랑 같이 줄줄 울며 먹던 날도 있었다. 나, 울면서도 밥을 이리 잘 먹는 사람이었던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주린 배를 채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놀라웠다. 꺼이꺼이 울며 비빔밥을 먹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조금 이해되던 순간.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시기였으니 마음가짐이 좀 달랐지 싶다. 정말 본능적으로, 잘 먹었다. 뭐 먹지? 싶다가도 미역국 냄비만 상기하면 마음이 놓였다. 거기에 윤기 나는 밥과 잘 익은 깍두기까지 있다면, 그 날은 계 탄 날이었다.

요즘은 아이와 나란히 앉아 여유 있게 미역국을 뜬다. 이쯤 되면 나의 소울푸드다. 아이가 미역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도 그 안에 내 기억과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국 한 그릇을 비운 아이가 '밥이랑 국 더!'를 외친다. 소고기미역국, 전복 미역국, 황태 미역국... 미역국이라면 그저 좋단다. 고소하게 감치는 바다의 맛. 어쩌면 이 맛이 아이의 '유년의 맛'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다 문득, '아내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는 내 아들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근사한 요리라도 하는 양 앞치마까지 두르면 더 폼이 날 테다. 친정엄마 생신날, 미역국을 끓이던 아빠가 미역이 우루루 불어나 당황하셨다던 재미난 이야기도 떠올랐다. 아이에겐 양 조절을 당부해야겠다. 앞치마는 비둘기색 리넨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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