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반말도 직장 내 괴롭힘... “수치심 주지 마세요”
‘야’ ‘너’ 반말도 직장 내 괴롭힘... “수치심 주지 마세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1.26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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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하는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회사 대표나 상사가 물건을 던지며 욕을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대표 아빠가 제가 하는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마음대로 일을 지시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대표에게 하소연했더니) 그 후 대표 아빠가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어디 눈깔을 뜨고 지랄을 하느냐, 너 한 대 패버리겠다’며 욕설을 퍼붓더니 서류철을 집어 던져 몸에 맞았습니다” “(회사에서) 아침마다 국민체조를 강제로 시키고,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사가) 소리를 지릅니다” “화장실을 팀원 중 한명씩만 돌아가면서 가도록 규제했습니다. 변비라도 있으면 ‘변비 있으니 5분만(기존 10분) 더 주십시오’하고 말을 해야 허락을 해줍니다.”

지난 7~11월 사이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내용 중 일부다.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882건 중 (중복포함 / 임금 체불 256건, 휴가 제한 222건, 근로감독·기타 203건을 제외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사례는 442건(중복포함 / 50.1%)으로 세부적으로는 부당지시 198건(44.8%), 모욕·명예훼손 138건(31.2%), 폭행·폭언 129건(29.2%), 따돌림 111건(25.1%), 업무외 강요 48건(10.9%), 기타 20건(4.5%)이 주를 이뤘다.

현 근로기준법이 인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지칭한다. ▲폭행/협박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 지시 ▲음주·흡연·회식 강요 ▲따돌림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 조롱 ▲‘야’ ‘너’ 등의 과도한 반말 등의 행위는 모두 처벌 대상이다. 지난해 7월 16일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10인 이상 사업장은 관련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미이행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해야 하고, 괴롭힘 발생 시 피해자 요구(가해자와 분리/사과 등의 합의/정식조사 후 징계)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이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경우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럼 442건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중 법의 보호를 받은 수는 얼마나 될까? 442건 중 회사 및 관계 당국에 신고된 건수는 86건(19.5%)에 불과했고, 신고 건 중에서도 66건은 후속 조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직장갑질 119 측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고자 현재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총 14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법은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친인척인 근로자가 가해자인 경우 조치의무를 기대하기 어렵고,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제재규정이 없어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지적이 있다”며 가해자가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친인척일 경우 과태료 1,000만원,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500만원의 처벌조항을 발의했다. 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입주민의 괴롭힘으로 인한 경비원의 자살 사건 등에서처럼 업무상 괴롭힘의 범위가 직장 내뿐만 아니라 고객, 도급인 등 제3자에 의해서도 발생하고 있다”며 처벌 대상을 제3자(도급인, 고객, 사업주 친족)로 확대하고 위반 시 과태료 1,000만원 부과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직장갑질 119는 “현행법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근로계약을 체결한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인 경우에만 해당한다”며 “간접고용,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처럼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건 사업주를 비롯한 실권자들의 올바른 노동 관념이다. 육체/정신적 고통을 가해 성과를 독려하는 건 과거 머슴과 노예에게 행해졌던 야만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법의 맹점을 이용한 가해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류은숙 노동인권운동가는 책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에서 “조직적 괴롭힘의 대표적인 유형이 저성과자로 낙인찍는 괴롭힘이다. 수치심을 활용해서 본보기로 처벌하고 ‘인민재판’을 유도한다. ‘저 사람 때문에 팀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주변에서 떼를 지어 한 사람을 고립시키고 괴롭힌다”며 “죄책감과 수치심은 구별돼야 한다. 죄책감은 어떤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행위로 보고 그에 따른 사죄와 책임을 유도한다. 구체적 행위에 따른 책임을 물으면 죄책감이 생긴다. 반면 수치심은 만성적인 창피 주기로 특정인의 몰락과 파괴를 유도하고 즐기는 데서 생긴다”고 지적한다.

수치심은 ‘야’ ‘너’ 등의 호칭과 부정적 감정이 스민 사소한 말투에서 비롯될 수 있다. 브리기테 블로벨의 소설 『못된 장난』 속 (주변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주인공은 “의사 선생님 말로는 메스꺼운 문자 메시지 한 통쯤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지속적으로 굴욕적인 문자를 받는다면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더 심하게... 이런 식의 정신적인 폭력은 소량의 독이 담긴 음식을 매일 먹는 것과 같다. 한두 번은 몸이 정화해낼 수 있다. 그러나 독이 오랫동안 몸속에 쌓이면 나중에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직장 상사를 견디지 못해 퇴사하는 수많은 이들은 말한다.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상사를 떠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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