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원해’... 비혼모, 허용 기준은?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원해’... 비혼모, 허용 기준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1.25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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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남자와 교제하는 일은 있어도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다만) 여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 (자녀) 한명쯤은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아이를 둔 친구들을 보면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생긴 다음에야 역시 그만둘 걸 그랬다고 후회해봤자 이미 때늦은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그대 눈동자에 건배:렌털 베이비』 속 에리는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독신 여성이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힘에 겨워 후회할까 봐 임신을 망설인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휴머노이드 베이비 700-1F’라는 (실제 인간과 매우 유사한) 아기 로봇 임대. 여름 한 철 육아 경험을 마친 에리는 “내 경우에는 육아에 남편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 같아요. 가끔은 회사 일도 희생해줄 만큼이 아니면 좀 힘들어요. 그런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다음 단계의 일은 생각할 수 없겠죠”라며 임신을 잠정 보류한다. 

미혼모가 혼전 관계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을 주로 지칭한다면 비혼모는 아예 결혼 생각이 없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선택한 경우다. 영어권에서는 자발적 싱글맘(single mother by choice)을 줄여 ‘초이스 맘’이라고도 부르는데, 성관계에 의한 임신이 아니더라도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후지타 사유리(41)의 비혼 출산도 정자 기증을 통해 이뤄졌다. 사유리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 산부인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지금도 (임신이) 늦었는데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애기(아기)를 못 가진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어요. 사랑하지 않는 남자랑 결혼해서 급하게 시험관을 하고 아이를 가지냐, 아니면 혼자서 애기를 기르냐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라며 “제 욕심 때문에 아빠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미안했어요. (다만) 폭행하고 술 마시는 아빠가 있는 것보다는 엄마가 혼자여도 열심히 살면 애기가 이해해준다고 생각해요”라고 임신 경위를 밝혔다. 

출산을 꺼리는 시대에 미혼 상태에서 임신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 수가 의외로 적지 않다.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따르면 30대 미혼 389명 중 10.3%가 ‘결혼하지 않고 자녀만 갖고 싶다’고 응답했고, 7.5%는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를 갖고 싶다’고 답했다. 합하면 17.8%, 열에 두명 꼴로 아이를 희망했다. 

일단 사유리의 비혼 출산 소식에 여론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많은데, 10년 전 방송인 허수경씨가 비혼모가 된다는 소식에 부정적 여론이 많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당시 허수경씨는 “혼자 사는 게 편해 (결혼하고픈)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들어서야 아이를 갖고 싶단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다만) 내가 속한 사회에서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전한 바 있다. 

사유리가 국내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임신을 한 건 국내에선 비혼모의 인공수정 시술이 현실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현재 모자보건법상 비혼모의 인공수정은 ‘합법’이지만 일선 병원에서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 등을 이유로 시술이 제한되는 상황이다. 이에 사유리는 “낙태뿐 아니라, 아기를 낳는 것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는데, 이와 관련해 여성계는 ‘내 몸에 대한 나의 선택권을 존중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 처지에 놓인 여성들의 임신 이야기를 다룬 소설 『280일』의 작가 전혜진 역시 SNS를 통해 “자궁을 포함해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문제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것도, 낙태의 비범죄화와 정자은행 출산 이슈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종합하자면 낙태든, 임신이든 자기 몸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달라는 것.

반발도 적지 않다. 아기 입장이 고려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의 선택만으로 아이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 이 세상에 한부모 가정이 많지만, 대개 불가피한 상황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데, 자발적으로 비혼모의 길을 택해 그런 (아빠가 부재한) 선택을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비혼모 밑에서 자란다고 해서 꼭 불행하란 법은 없지만, 위 에리의 사례처럼 체험해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섣불리 긍/부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권복규 의학박사는 책 『생명 윤리와 법』에서 “합법적 부부만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해 자유주의적인 입장에서 여러 비판이 가능하다. 보수적 입장에서의 일반적인 주장은 합법적 부부만이 현재의 사회적 규범 내에서 자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고, 어린이가 균형 잡힌 인간으로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부모를 모두 필요로 (하다는 것이다. 다만) 합법적인 부부 중에서도 자녀 학대 등으로 자녀 양육에 부적합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피임과 불임 치료 등으로 생식에 대한 통제 능력이 발달한 현대에서 자녀 출산은 예전처럼 자연 혹은 하늘의 뜻에 맡겨진 것이 아닌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됐다는 반론도 있다”고 말한다. 

이번 사안을 두고 국회가 제도 검토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른바 ‘정상 가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혼모를 금지하기에도, 그렇다고 무조건 허용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금지든 허용이든 최소한의 (입양에 준하는)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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