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바꾼 세상… ‘새로운 얼굴을 찾아라’
마스크가 바꾼 세상… ‘새로운 얼굴을 찾아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1.17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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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1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마스크가 새로운 얼굴이 돼버린 것. 희고 검은 면(綿)이 면(面) 절반을 뒤덮고 있다. 성형수술을 하면 얼굴과 함께 인생도 바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마스크라는 새로운 ‘얼굴’을 얻게 된 사람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일단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잠시라도 밖에 나가면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는 이들이 많다. 과거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하자 나체가 부끄러워진 것과 마찬가지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일반화되자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이 감추고 싶은 사적 영역이 된 것이다. 

늘 마스크를 챙겨야 해서 귀찮지만, 의외로 심적으로 편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은 표정을 관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늘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서비스했던 감정노동자들이나 상사 앞에서 항상 괜찮은 표정을 연기해야 했던 직장인들에게 마스크는 일종의 ‘심리적 방패’다. 일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이 마스크 뒤에서 한결 부드럽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 마스크에 의해 완화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반대로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지니 불안하다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마스크는 그 뒤의 얼굴에 대한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없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 살인을 저지른다는 ‘빨간 마스크’ 괴담은 괜히 유행한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마스크 뒤의 찢어진 입을 상상했기 때문에 널리 퍼졌던 괴담이다.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대화한 상대가 혹 나를 비웃지는 않았을까? 마스크를 벗겨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마스크로 인해 우리 사회가 공감능력을 잃어갈 수 있음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표정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표적인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이다. 폴 에크먼의 책 『표정의 심리학』에 따르면 거의 모든 감정이 표정을 통해 드러난다. 가령 ‘약한 두려움 또는 상당히 억제된 두려움’은 약간 펴진 입술로 나타난다. 한쪽 입술의 끝이 경직된 표정은 모멸감을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표정을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소통하는데, 마스크는 이러한 공감을 막는다. 누군가가 표정으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신호를 어떻게 알아챌 것인가. 마스크 뒤의 표정을 상상하는 우리는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MBTI·꼰대레벨·학과 테스트 등 자기 성향을 유형화하는 테스트의 유행이 마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얼굴은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그 얼굴이 마스크에 의해 가로막히니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려는 욕구가 커진다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이러한 욕구를 ‘레이블링 게임’이라고 지칭하며 내년 트렌드로 꼽았다. 

일상에서 내보일 수 없는 얼굴을 가상에서라도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가령 ‘네이버’의 손자회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증강현실 아바타 앱 ‘제페토’가 인기다. 제페토는 얼굴인식과 증강현실, 3D 기술 등을 이용해 새로운 ‘얼굴’을 만들 수 있는 앱이다. 이용자는 그 얼굴을 가지고 현실과 닮은 가상현실 세상을 즐긴다. 최근 네이버제트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로부터 총 1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기업들이 이 새로운 ‘얼굴’에서 미래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마스크가 뒤덮고 있는 면(面)은 또 어떤 국면(局面)을 만들까. 마스크가 일으키는 변화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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