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경찰은 왜 아이들을 돌려보낼까
아동학대… 경찰은 왜 아이들을 돌려보낼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1.1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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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생후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A씨가 지난 11일 구속됐다. A씨 부부는 친딸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이유로 올해 초 피해 아동을 입양했고, 지난달 1일에는 EBS 입양 가족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피해 아동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지난달 13일 입양아는 사망했고, 피해 아동의 몸에 멍과 상처가 많은 것을 발견한 의료진이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아동을 정밀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3일 사인이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라는 최종 소견을 내놨다. 

피해 아동이 사망하기 전까지 세 차례 아동 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은 학대 증거를 찾지 못하고 피해 아동을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이 세 번의 기회 중에 단 한 번이라도 피해 아동을 부모와 분리했다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경찰과 아동 보호기관은 아이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을까. 

일단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이 피해 아동을 가족과 분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2018년 기준 학대 피해 아동에게 분리 보호 조치가 취해진 비율은 약 16%이다. 2012년 약 30%에 달했던 것과 비교해 분리 보호 조치 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열에 아홉은 학대를 당하더라도 가해자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격리되더라도 한 달여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지난 2012년에서 2017년까지 ‘학대 피해 아동 쉼터’(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보조를 받아 운영되는 아동보호기관, 지역마다 명칭이 다르다, 이하 아동 쉼터)에 들어온 아이 두 명 중 한 명은 일시적으로 보호받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2014년에는 아동 쉼터에 들어왔다가 퇴소한 아동 중 1개월 미만 거주자가 517명으로, 전체의 61.6%를 차지했다. 물론 아이를 가족과 분리하는 것만이 아동 학대를 막는 방법은 아니지만, 지난달 13일 사망한 아동과 같은 사례를 보면 좀 더 면밀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가족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 피해 아동을 받아낼 준비가 덜 됐다고 말한다.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숙식 등을 제공하는 아동 쉼터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3월 기준 아동 쉼터 수는 전국 72개소이며, 쉼터 한 곳 당 평균 정원은 5~7명으로 알려졌다. 즉, 전국적으로 최대 수용인원이 500여명 정도인데,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8 전국 아동학대 현황’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2017년부터 해마다 2만 건이 넘는다. 

전국 대부분의 아동 쉼터가 매년 가득 차있어 피해 아동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에서 아동 학대 문제 전문가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는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다. 대안이 없으니 제대로 분리할 수 없다. 분리하더라도 가정에 빨리 복귀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명의 사회복지사가 너무 많은 아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아동 학대 문제를 깊이 있게 취재해온 류이근 기자는 같은 책에서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수백 가구를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열악한 처우로 사회복지사의 이직이 잦은 탓에 전문성 축적도 어렵다”며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는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근본 원인은 정부 예산 부족이다. 아동 학대 방지와 관련한 올해 중앙정부 예산은 약 285억원으로, 보건복지부 총 예산인 82조5,269억원 대비 0.03% 수준이다. 이는 선진국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평이다. 아동 학대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 늘 뒷전이었다.   

지난 6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동 학대 관련 민생간담회에서 “지난 5년 동안 학대로 숨진 아이만 해도 160명이다. 이론상으로는 제도가 있는데 구멍이 너무 많다”며 “아동 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들이 20여건 나와 있다. 빨리 처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강선우 의원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이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고 아동보호전문기관도 가이드라인 부족으로 현장에서 혼란이 있다”며 “전담 공무원들의 실효성을 높이고 운영에 필요한 보조할 근거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인의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을 힘없는 아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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