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9월 출판사 사정으로 인해 출간이 연기됐던 그룹 소녀시대 출신 제시카 정의 소설 『샤인』이 출간됐다. 소설에는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길 갈망했고, 가족을 위해 데뷔해야만 하는 ‘DB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레이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시종일관 레이첼을 포함한 연습생들이 데뷔를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들을 보여준다. 모든 빛 뒤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 ‘샤인’(shine)이라는 제목처럼, 무대 위에서 매 순간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서 연습생들은 어두운 시간을 견딘다.
작가는 연습생들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대다수의 연습생들은 이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온종일 머무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연습실에서 새벽 네 시까지 노래 연습과 춤 연습을 하다가 근처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일어나서, 다시 연습실로 돌아와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연습생들은 365일 24시간을 연습에 투자한다. 대부분 숙소에서 살며 한 달에 겨우 한 번쯤 집에 가기 일쑤이다. 말 그대로 케이 팝과 함께 숨 쉬고, 먹고, 자는 것이다.”
그들이 치열하게 연습하는 이유는 실제 데뷔에 이르는 연습생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연습생들은 매달 강당에 모여 이사진에게 월말 평가를 받는데 이 평가는 계속 연습생으로 남을지, 방출돼야 할지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그래서 트레이너는 “항상 다른 연습생들을 넘어서는 데 집중하고, 연습에만 매진하라”고 조언한다. 연습생들은 데뷔하기까지 보통 5~7년 동안 훈련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데뷔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연예인이 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레이첼은 생각한다. ‘마음의 평온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정상에 서게 될까? 아니면 그림자 속에 남게 될까?’
“레이첼, 더 분발해. 레이첼, 케이 팝 스타는 언제나 센스 있게 말하고, 사랑스럽고, 완벽해야 해.” 연습생들의 목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함’이다. 그들이 되려는 아이돌이 곧 다른 이들의 ‘우상’이기 때문이다. 레이첼은 노래와 춤 실력이 연습생들 중에서 최고 수준이지만 모의 인터뷰에서 말을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는다. 매일 ‘몸무게 검사’를 받고 잘 먹지 못해 말랐지만 레이첼은 이런 비판도 받게 된다. “배 좀 봐. 소가 따로 없네. 바로 벗어.” 심지어 트레이너들은 연습생들이 아무리 격렬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더라도 땀을 흘리면 싫어한다. 땀을 흘리는 모습은 완벽한 사람의 모습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제시카 정은 책의 앞부분에 “이 책은 허구의 내용입니다. 역사적 사건, 실존 인물, 실제 지명이 언급된 경우 모두 허구적으로 사용된 것임을 밝힙니다. 이외 이름, 인물, 장소, 사건 등은 작가 상상력의 산물이므로 실제와 무관합니다”라고 적었으나 소설 속 연습생들의 생활만은 허구가 아닌 듯싶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케이 팝 업계는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가수들을 가꾸는 일이 업계 그 자체예요. 연습생은 11살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자라고 함께 훈련받죠. 모든 음정과 동작을 완벽하게 익힙니다. 위험 부담이 큽니다. 몇 달 만에 데뷔하기도 하지만 10년이 걸리기도 하죠. 대다수 연습생은 데뷔를 못 합니다.”
데뷔하기까지 각각 4년에서 5년의 연습생 기간을 보낸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들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2주에 하루 쉬고 13일 동안 다시 연습했어요.”
“규칙이 정말 많았고 파악할 것도 많았어요. ‘이것도, 저것도 싫어하시는구나’ 제가 한 모든 게 틀렸죠.”
“앞날도 모른 채 여자애들 몇 명과 날마다 같이 있었던 거죠.” (로제)
“하루에 14시간씩 연습만 했죠.”
“매달 친구들을 집으로 보내야 했던 기억이 나요. 평가에서 떨어져서 가야 했거든요.”
“면전에서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정말 가혹해요” (제니)
한편, 제시카 정과 블랙핑크 멤버들은 그들의 빛나는 모습을 내려놓고 왜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꺼냈을까. 누군가 상처를 꺼내놓고 아프다고 말할 때, 그 이면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아마 그들은 연예인이 돼서도 끊임없이 완벽하길 강요받고, 끝없는 경쟁과 불안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연습생일 때는 회사만 신경 쓰면 됐으나 데뷔 후에는 수많은 팬들의 눈까지 언제 어디서나 그들을 감시하게 됐으니 불안은 더욱 심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들은 “부유 속 빈곤”의 최전방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