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으면 총살,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 중국 내 탈북민이 처한 현실
“운 좋으면 총살,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 중국 내 탈북민이 처한 현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1.05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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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미래이니셔티브' 홈페이지]
[사진='한국미래이니셔티브' 홈페이지]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기독교는 북한 이탈 주민들(탈북민)이 가장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다. 탈북 지원단체 대다수가 기독교 성향을 지녀 접촉면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의 (주체)사상 체계가 기독교의 교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탈북민은 “주체사상에서 수령을 빼고 그 자리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넣으면 별다른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공산주의 사상은 사실 기독교와 아주 유사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북한 정권이 기독교를 탄압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악랄한 미국인 선교사에 관한 괴담이다. 미국인 선교사가 자신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쳐 먹은 아이의 이마에 염산으로 ‘도적’이란 글자를 새겼다는 것.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공산당을 괴물로 묘사했던 것과 유사한 대목인데, 이는 아이들로 하여금 종교를 경멸하고 최고지도자를 신격화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다.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세례까지 받은 김일성의 전력과 배치되긴 하지만, 이와 관련해 북한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김일성이 기독교 집안 출신이라 기독교 속성을 너무 잘 안다. 기독교를 그대로 두면 권력 세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신격화해 체제를 유지하려 하는데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를 허용하면 체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북한 정권은 기독교를 접한 주민을 남한행을 꾀한 것만큼이나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지난 1일 발간한 「2020북한 종교자유백서」(2007년 이후 입국한 탈북민 1만4,832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가까이(46.7%·6,408명)가 북한에서 종교활동으로 적발될 경우 북한 내 최고 수위 처벌인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고 응답했다. 교화소행(10.7%·1,467명)과 노동단련형(3%·417명)이 그 뒤를 이었는데, 이들의 생존 가능성은 22.2%, 그 외 17.2%는 사망하고 60.6%는 생사불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에서 종교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탈북민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7일 비영리 인권단체 한국미래이니셔티브가 발간한 보고서(2019년부터 7개월간 진행한 탈북민 인터뷰 117건 수록)에 따르면 A씨는 탈북혐의로 중국 장춘의 철북감옥에 수감되던 중 기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A씨는 “전기 고문과 물고문을 당했고, 12시간 동안 팔다리가 묶여 매달리는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 종교자유 침해 피해자는 273명, 그중 기독교인은 215명(무속신앙 56명, 기타 2명)이었으며, 그중 대다수는 임의 체포·구금·고문(북한·중국에서 이뤄진 중복 피해 포함)을 당했고, 일부는 성폭행(32건) 혹은 처형(20건)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한행을 꾀했거나 기독교(종교)를 접한 경우에 보내지는 것으로 알려진 정치범수용소에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탈북민들 사이에선 “운 좋으면 총살이고 운 나쁘면 정치범 수용소”란 말이 도는데, 그 참혹한 일상과 관련해 정치범수용소(개천 14호)에서 태어나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한 유일한 인물로 알려진 신동혁씨는 책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에서 “2004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재봉기 받침대를 등에 지고 2층으로 올라가다가 손에 힘이 빠지면서 떨어뜨려 받침대가 부서져 버렸다. (중략) 나는 담당 보위지도원 사무실에 불려가 오른손 세 번째 손가락 첫째 마디가 잘려 나가는 처벌을 받았다. (이 외에도)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 잡히는 바람에 14호 관리소 지하 비밀감옥으로 끌려가 14세의 어린 나이에 손과 발이 묶인 채 불고문을 당했고, 그 상처는 영원히 내 몸의 일부로 남아있다”며 “이런 일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전체 5~6만 명의 수용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일이었다”고 술회한다.

다행히 코로나19 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차단하면서 현재 중국 내에서 체포된 탈북민의 강제 북송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중국 내 탈북민에게 인도적 지원을 가하기에 좋은 기회일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 회장은 “중국은 (난민 보호를 위한) 국제조약 의무를 계속 위반하고 이들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해 고문과 징역, 심지어 처형까지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생명을 구할 엄청난 기회가 생겼습니다. 북한이 최근 코로나로 이들을 데려가라는 중국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인도주의적 자비를 요청하고 이들을 한국으로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면, 중국 구치소에 수감 중인 수백명의 남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탈북 난민을 대신한 이 호소의 진정성을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남북 관계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외교적 셈법을 고민하는 사이 탈북민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중 누군가는 죽는 것보다 못한 정치범수용소행을 앞두고 죽음을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이들은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라는 ‘대’(大)를 위해 희생해야 할 ‘소’(小)의 존재일까? 문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국내외 여러 사람이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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