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칼럼] 걸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박흥식 칼럼] 걸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 박흥식 논설위원
  • 승인 2020.11.0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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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논설위원
前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장

[독서신문] “걸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고 책으로도 얻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가득 채워주며 버릴 것은 버리게 해준다.” 엠마뉴엘 칸트가 말했습니다.

11월입니다. 독서와 사색 또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얼마 전부터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걷기를 통해 삶을 반추하고 나 자신을 닦습니다. 사실 걷기는 몸의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의외로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걷기는 나에게 곧 마음을 정화하고 나의 본질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심화시킵니다. 언택트 시대, 대면접촉도 어렵고 집안에서 활동 없이 지내다 보면 쓸데없는 잡념이나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가까운 주변에서 걸을 수 있다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삶의 불만족도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에 맺힌 것은 어떻든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풀지 않으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걸으면서 마음을 가다듬다 보면 모든 불안정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안정을 얻습니다.

걸으면서 사색의 주제를 정하고 걷는다면 일석이조입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좋고, 앞으로 쓰고 싶은 글에 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걷기에 좋을 때란 딱히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태양 빛이 강하든 약하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시간만 주어지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걷기에 좋은 때입니다. 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맞춤한 때와 장소도 있습니다.

걸으려면 먼저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장대비가 오거나 폭풍이 올 때는 분명 좋지 않습니다. 날이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 때나 벚꽃이 아름다운 봄날이나 은하수가 흐르는 가을밤도 걷기에 좋습니다.

돌아보니 서울에서 스무 해 넘게 살아왔고 경기도 용인에서 스무 해를 살아왔습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 등, 등산 위주로 걸었지만, 도시를 떠난 후 지금은 동네 주변에 새로 다듬어진 개천 변을 주로 걷습니다. 가끔은 공원길을 걷거나 근교의 둘레길을 찾아다닙니다.

길을 걸으며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보고, 당신이 들은 것을 나도 듣습니다. 우리는 풍경이 베푸는 축복을 느낍니다. 빛과 어둠, 비와 바람, 나무들의 아름다움과 늠름함, 공기 속에 흐르는 이름 모를 향기들, 오만가지의 크고 작은 소리, 계절의 순환이 일으키는 감정들을 함께 나누며 걷기라는 행위는 나의 기분을 북돋고 충만한 기운과 편안하고 활기찬 기쁨을 만들어 줍니다.
  
걸으면서 머릿속 생각하는 주제는 한없이 이어집니다.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과 마주합니다. 돌아설 이정표를 정하고 어느 정도 걸어갔다 다시 돌아오는 길이지만, 다시 출발 지점으로 걸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종종 길이 끝날 때쯤에는 깊은 통찰의 결론을 얻게 됩니다. 나는 이때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장에 한두 줄 키워드로 남겨 둡니다. 이 순간의 결론과 아이디어가 가장 소중한 티핑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들은 어떤 이들에겐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겐 ‘후회’일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들에겐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걷기는 인생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변곡점이 됩니다. 걷기를 통해 내 인생의 변곡점은 예기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서 선물처럼 주어지기도 합니다. 허기를 느끼는 결핍,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참았다 터지는 눈물, 심지어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조차도 사그라지며, 세상에 대한 깊은 실망감도 걷기를 통해 치유됩니다.

걷기는 내 삶의 새로운 희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산책자인 나는 걷는 동안 내 머릿속 지금의 나를 떠나서 저 먼 곳 과거를 헤매다가 다시 하나의 자아, 하나의 인격으로 되돌아갑니다. 빛의 은총과 바람의 설래임을 느끼며, 주위의 풍경들을 눈으로 코로 가슴으로 들어 마실 때, 아~ 살아있구나, 하는 실감도 생생해집니다. 걷는 동안 그렇게 기분 전환을 하면서 근심과 걱정은 그 부피가 작아지고 이윽고 내 속에서 사라집니다.

걷는 동안 하찮은 세상사를 잊고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릴 적에 부르던 노래를 불러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점점 커져서 강렬하게 빛나는 푸른 빛으로 가득 채워가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그 푸른 빛은 당신이 사는 곳에서 마을로, 다시 도시에서 나라로 점점 넓게 퍼져서 온 세상을 거대한 푸른 빛으로 감쌀 것입니다. 또한 그 빛은 매일의 고난을 넘어서서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힘찬 기운과 에너지와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나는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아마 내일도 걸을 것입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좋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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