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의 올바른 사용법
‘커밍아웃’의 올바른 사용법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11.04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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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커밍아웃’(coming out)이란 ‘come out of closet’(벽장 속에서 나오다)에서 유래한 용어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성소수자가 더 이상 어두컴컴한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에 나와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성소수자의 인권운동과도 연결돼 있는 이 ‘커밍아웃’이 최근 엉뚱한 방향으로 사용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자 과거 이 검사가 동료 검사 협박죄로 체포된 피의자를 가혹하게 수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자신의 SNS에 게시하면서 “이렇게 커밍아웃 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이라고 적었다. 이에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를 비롯한 일선 검사들은 “나도 커밍아웃하겠다”며 추 장관을 비판하는 댓글을 연달아 올리며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한동안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커밍아웃이 갖고 있는 본래의 뜻과 어긋날 뿐더러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걸어온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역시 “추 장관과 검찰은 더 높은 인권감수성을 지녀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용어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기자협회가 제정한 인권 보도 준칙에 의하면 ‘커밍아웃 : 현재 동성애자가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성정체성을 밝히는 의미로 사용.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표현 등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 필요’라고 적시돼 있다.

논문 「성소수자 청년의 커밍아웃 의미의 재구성」의 저자 정혜숙은 “커밍아웃은 보편적으로 성소수자 개인이 자신의 성정체성과 관련된 의식과 소수적 위치를 인식하고 드러내는 과정”이라며 “커밍아웃의 의미를 설명할 때, ‘벽장(closeted)에서 나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비밀로서 가두는 ‘벽장’으로부터 나와 세상 밖 현실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대면해 드러내고 알리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커밍아웃 검사 사표’ ‘추미애 커밍아웃 논란’ ‘검사들의 커밍아웃’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 성소수자의 인권과 관계된 용어의 본질을 더욱 흐리고 있다.

앞서 추 장관은 지난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때, 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소설 쓰시네”라고 답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에 소설가협회는 성명을 내고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소설을 거짓말 나부랭이 정도로 취급한 것은 어려운 창작 여건에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하는 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라며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공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후에 추 장관은 “상당히 죄송하다”며 위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책 『어른의 어휘력』의 저자 유선경은 “언어의 한계는 상상과 인식의 한계”라고 설명한다. 이는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는 뜻과 연결된다. 저자에 따르면, 어휘를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이다. ‘뜻이 통하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의 언어 품격은 물론 인격 역시 추락한다. 저자의 논의처럼 정확한 언어 사용이야 말로 “감정을 품위 있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더군다나 사회지도층이 사용하는 언어는 국민들의 감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언어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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