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사망… ‘무관심’ 바이러스가 옮긴 비극
택배노동자 사망… ‘무관심’ 바이러스가 옮긴 비극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23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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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가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8일 서울 강북구에서 배송업무를 하던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A씨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12일에는 두 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한진택배 서울 동대문지사에서 근무하던 B씨와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택배 포장 지원 업무 등을 담당하던 C씨다. 지난 20일 밤에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D씨가 주차장 간이휴게실에서 쉬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이번 달에만 네명.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택배노동자 한 해 평균 산재 사망자 수는 2.25명꼴이었다. 그런데 올해만 열세명(택배기사 열명)의 택배 업계 종사자가 사망했다. 사인은 대부분 ‘과로사’. 어째서 이들은 과로(過勞)하게 됐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해 배송 물량이 전보다 몇 배는 더 늘어났지만 바뀌지 않은 근무 환경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은 보통 ‘구역당’ 계약을 맺는다. 자기가 맡은 구역에 할당된 배송물량은 어떻게든 소화해야 하는 구조다. 올해 코로나19로 급증한 배송 물량은 택배노동자들을 더욱더 지치게 했지만 기업은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급기야 일부 택배기사들은 자비로 대체인력을 고용해 남은 물량을 해결해야 했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언제부터인가 유통업계에서는 ‘빠른 배송’ 경쟁을 시작했고, 택배노동자들은 그날 받은 물량을 24시간 내에 배송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게 됐다. 지난 12일 숨진 채 발견된 김모씨는 사망 나흘 전 새벽 네 시에 팀장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으나 묵살 당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저 16번지 안 받으면 안 될까 해서요. (중략) 중간에 끊고 가려고 해도 오늘 보셨겠지만 재운 것도 많고 거의 큰 짐에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일한다는 게… 저 집에 가면 다섯 시 밥 먹고 씻고 터미널로 가면 한숨 못 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 정리해야 해요. 어제도 집에 도착 (새벽) 두 시, 오늘 (새벽) 다섯 시.”   

코로나19로 발생한 과도한 업무량을 시의적절한 업무 시스템으로 대처하지 못한 택배업계의 책임이 가장 크다지만, 그 누구도 택배노동자의 죽음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택배노동자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스마트폰 앱 속 ‘당일배송’ ‘새벽배송’ 버튼을 눌렀다. 지난달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택배기사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나 공허한 울림일 뿐이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이다. 택배노동자 넷이 더 죽어 나가기까지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에 조금씩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 미안함은 비단 택배노동자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홍세화는 책 『미안함에 대하여』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지난 22일 기준 총 453명)보다 더 많은 산재(産災)로 사망한 사람들(매년 2,000여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회를 안타까워하며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만, 기업의 이윤 앞에서 인간의 몸은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길들여졌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는 전염이 되지만 산재는 전염되지 않아서일까. 우리는 지금도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산재에 무관심하다. 그러니 택배업계 종사자가 과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다른 업계 노동자의 산재 위험은 계속된다. 우리 사회에는 ‘무관심’이라는 바이러스가 아무런 방역 없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주문한 물품을 그날 받을 정도로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죽고 다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떨어져서, 근무 환경이 나빠서, 안전장치가 없어서…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곳곳에 첨단 시설이 즐비해졌다는 팩트는 아무리 더워도 휴게실에 창문 하나 낼 수 없어 생을 마감한 ‘그’ 노동자의 비극을 덮을 수 없다. 손가락 절단 사고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해서 허술한 안전장치 때문에 끔찍하게 죽는 ‘그’ 노동자의 불행이 기쁨으로 둔갑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배달되면서 개인의 편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 하루 열다섯 시간씩 배달하는 ‘그’ 사람의 고충을 해결하지 않는다.” ‘무관심’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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