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뼛조각, 동굴, 파피루스, 양피지, 그리고 OO이다”
책은 “뼛조각, 동굴, 파피루스, 양피지, 그리고 OO이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20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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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오늘날에는 음원파일(오디오북)과 스마트폰 화면에 떠 있는 문자(전자책)도 책이라고 부른다. 물론 여전히 종이책만이 책이라고 여기는 독자들이 있지만, 고독한 외침일 뿐이다. 책이란 대체 뭘까? 그러고 보면 책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해온 듯하다. 

독일의 사서 우베 요쿰의 책 『모든 책의 역사』에 따르면, 혹자는 최초의 책이 40만 년 전에 이미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독일 튀링겐 지방의 빌징스레벤에서 출토된 동물의 뼈가 책이라는 것이다. 이 뼈에는 약 200만 년 전에 태어난 호모에렉투스의 후손이 새긴 무늬가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 무늬가 특정한 상징을 담고 있다고 추측한다.(물론, 그냥 예쁜 무늬라고 보는 이가 더 많다.)  

1991년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황갈색 유물(약 7만5000년 전 제작 추정)을 최초의 책으로 보는 이도 있다. 이 유물은 약 20만 년 전 태어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 만든 것인데, 그 위에 마름모무늬가 새겨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무늬가 일종의 기호이고, 따라서 이 유물이 곧 책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유물과 함께 발견된 붉은색 달팽이집 모양의 유물 때문이다. 이 달팽이집 모양의 유물에서 실용적인 쓰임새를 찾을 수 없기에 마름모무늬 또한 어떤 상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책이 동굴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엄밀히 말해 동굴에 새겨진 벽화를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300여 개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림(기원전 약 1만8000년 전에서 1만1000년 제작 추정)의 절반 이상은 구체적인 물체나 생물에 대한 묘사가 아닌 추상적인 기호다. 이 기호들 사이에는 특정한 패턴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기호는 대부분 ‘방사상 구조’(중앙의 한 점에서 사방으로 거미줄이나 바큇살처럼 뻗어 나간 모양)를 따라 배열되고, 벽화의 중심에는 항상 황소나 들소, 말이 자리한다. 이러한 동굴벽화가 단순한 예술을 넘어서 표기법 체계라는 데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기원전 1만 년경 신석기 시대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기원전 4000년경에는 최초의 도시들이 생겨나고, 기원전 3500년경 인류는 점토판 위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점토판에 동굴벽화와 마찬가지의 그림뿐만 아니라 문자와 비슷한 기호도 새긴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점토판이 최초의 책이라는 이들도 있다. 

이어 고대 로마인과 그리스인,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글을 썼다. 그들은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얇게 펴서 그 위에다 글을 쓰고 돌돌 말았다. 지금의 책과는 분명 다른 형태이지만, 이 두루마리는 책과 같이 기능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이런 기능에 주목한다면, 책의 기원은 기원전 28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책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1세기다. 이 시기 사람들은 양피지에 글을 써서 풀이나 실로 엮고 나무나 금속, 상아 등 얇은 판으로 만든 표지를 덧댔다. 이를 코덱스(Codex, 책자본)라고 부른다. 300쪽 분량의 코덱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30여 마리의 소를 도살해야 했다. 총 75장의 양피지가 필요한데, 송아지 한 마리로는 양피지 2장 이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기원후 2세기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됐고, 드디어 종이책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7세기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목판 인쇄가 시작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은 14세기 통일신라에서 제작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책은 세계적으로 소수의 전유물이었으나 이후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점차 대중화된다.

책은 현대에 와서 또다시 그 형태를 달리한다. 스크린에 뜨는 문자로,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소리로. 또 어떻게 변할까? 뼛조각에서 동굴,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로 변해왔으니 무엇으로 변하든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책이 그 형태를 달리하더라도 지식의 기록과 저장이라는 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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