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는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첫째, 종이의 질감이 주는 묘한 물질감 때문이다. 유영만은 “손길과 눈길이 만나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린 책들은 이제 독자의 뇌를 순간적으로 감전시키는 끊을 수 없는 선물, 뇌물(腦物)로 작용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밑줄 칠 때 글자와 함께 따라서 스며 나오는 소리, 책장을 넘길 때의 종이가 꺾이면서 나오는 투박한 소리와 다음 페이지로 안착되는 소리, 그래 어서와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환영의 박수 소리가 다음 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기분이다. 손으로 책장을 넘겨다보면서 흔적을 남기는 독서는 종이책이 나에게 주는 행복한 촉감이다. 다시 뒤를 이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르는 설렘과 함께 불확실한 기대감이 멈추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둘째, 종이책의 매력은 밑줄을 긋고 거기에 독자의 생각을 가미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요즘에는 전자책에서도 밑줄을 긋거나 생각을 추가할 수 있지만, 유영만은 종이책과 전자책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밑줄을 칠 때 나는 소리와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포개지면서 또 다른 생각이 탄생하고 저절로 신이 난다. (중략) 꾹꾹 눌러 메모하면서 생각의 파편이 종이책을 뚫고 들어가 각인되는 느린 여유로움이 좋다.”
셋째, 유영만은 종이책을 들고 읽는 것이 마치 모래밭 양쪽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다고 표현한다. 그는 우치다 타츠루의 책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속 문장을 인용한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은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얇은 모래 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아아,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습니다.”
『당신은 책과 눈이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유영만 지음│카모마일북스 펴냄│348쪽│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