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칼럼]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박흥식 칼럼]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 박흥식 논설위원
  • 승인 2020.10.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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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식 논설위원前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장
박흥식 논설위원
前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장

[독서신문] 지금 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는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로 위험과 위기의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최근 역학을 공부하는 지인으로부터 주역에 나오는 택풍대과의 괘와 함께 ‘독립불구’ ‘돈세무민’ 사자성어를 현실의 위기 극복과 함께 나의 삶에 지침과 신조로 삼으면 좋겠다며 알려줬다. 주역의 택풍대과 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에 나에게 마음에 담으라고 보내준 것일까?

위기에 처한 사람이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는 지혜는 ‘독립불구(獨立不懼) 돈세무민(遯世無悶)’이라고 이른다. 즉,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나가지 않고 숨어 있어도 번민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주역의 해설서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주역 64괘줄 28괘인 택풍대과(擇風大過) 괘는 그 괘상(卦象)을 살펴보면 맨 위와 맨 아래가 모두 음효(陰爻) 괘이고, 가운데 2, 3, 4, 5번째의 효는 모두 양효(陽爻) 괘인 모습이다. 언뜻 집을 위아래로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흔들리는 모습이며, 괘상을 전체적으로 보면 바람 위에 연못이 차 있는 모습이다.

공자가 『대상전』에서 64괘 각각의 괘상을 보고 택풍대과에 대해 ‘상왈’(象曰)로 붙인 설명의 글에는 “택멸목(擇滅木)이 대과(大過)니 군자(君子) 이(以)하야 독립불구(獨立不懼)하며 돈세무민(遯世無悶)하나니라”로 말한다. 바람(風)을 나무(木)로 봐서 ‘나무 위로 물(澤)이 차올라서 나무가 멸(滅)한 것이 대과(大過)이니 군자가 이로써 홀로서도 두렵지 아니하고 세상을 피해도 민망하지 아니함’이라고 했다. 위의 원문을 해석하면, 대과(大過)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지나감’이다. 물론 ‘큰 허물’란 뜻도 있다. 괘를 보내준 지인은 위기를 맞이하는 사람에게 어떤 정신으로 난국을 극복할지 조언을 준 것이다.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이 괘를 받아들고 또 하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생각해 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죠르바』의 작품 속 죠르바의 대사와 같이 일생을 살다간 그의 묘비명은 작가의 비범한 깨달음을 일깨워준다. 그의 목소리는 위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나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명료하고 꾸밈없는 선언이다. 또 그의 선언 속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고백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단순한 삶을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소유를 멀리하고 욕망을 다스리라는 경구이다. 배고픔과 되고픔, 먹고픔과 이기고픔, 인간 내면의 고픔은 결핍감에 헐떡이며 채움을 욕망한다. 하지만 비움을 실천하고 고픔의 고통을 극복한 사람은 자유인이며. 이미 만족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당하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이것이 아닌 저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는 인생관은 그 사람의 본질적인 가치를 결정한다. 반면 우리의 속물성은 욕망의 충동과 기만적인 의무감을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에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기 비하와 굴욕감을 안겨준다.

인간의 삶이란 이성의 법칙에 의존하기보다는 본능의 법칙에 부합하여 학벌, 취업, 아파트 평수처럼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위계와 서열 속에서 평가당하고 비교당하고 좌절당하는 과정을 거치며 삶의 의미까지 상실할 수도 있다. 주역의 택풍대과의 괘는 우리에게 이러한 속물근성에 맞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사랑을 주문하고 있다. 바라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사는 삶은 왜 의미가 있는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논증할 필요는 없다. 위험사회, 속물 사회가 파 놓은 덫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보호막이 되기엔 충분하다.

성공한 사람, 부자들과 권력자들 우리가 느끼는 강자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우리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약자들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부유하려고 만드는 세상에서 비우고 버리며 자신의 독특성을 잃지 말라. 새로운 규칙, 새로운 혁신을 통해 남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라.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리는 늘 기존질서의 승자 앞에서 왜소함을 느끼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신, 자신만의 새로운 방법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가능성을 찾는다면 희망은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에서 보면 약자에게도 희망은 존재한다. 이 책은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던져준다.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책 속에는 파리의 살롱에서 배척받은 인상파 화가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와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 중 무엇이 나은가? 등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독특성을 부각하는 삶을 소개한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은 말한다. “변화와 혁신은 변방에서 일어납니다. 다만, 패배 의식에 젖어 있는 경우에는 불가능합니다.” “자존감과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라고 밝혔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택풍대과’의 교훈을 다 함께 나누며, 홀로 선 아웃사이더가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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