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지혜의 왕이라 불린 솔로몬은 『성경:전도서』에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구나 (중략) ‘보라. 새 것이로다’라고 할 만한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 아래 세상만사는 새로운 ‘창조’보다는 기존 것들의 ‘융합’이 대다수인데, 음식도 다르지 않다. 이름하여 ‘퓨전 요리’. 궁중(간장) 떡볶이가 고추장을 만나 매운 떡볶이를 이루고, 동양의 밥과 서양의 버거가 만나 밥버거를 이루듯 최근에는 덮밥과 죽이 조합된 이른바 ‘덮죽’이 여러모로 관심을 끌고 있다.
죽을 덮밥 형태로 만든 덮죽이 관심을 받는 건 SBS 예능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골목식당)을 통해서다. 방송은 열이 창업하면 여섯이 문을 닫는다는 외식업계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경북 포항의 ‘The 신촌‘s 덮죽’(덮죽집) 사장 A씨가 새로운 메뉴 개발에 몰두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메뉴 개발을 위해 A씨가 작성한 레시피 연구 노트만 무려 4권.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덮죽의 대중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백종원은 “획기적인 메뉴(다). 처음 (A씨가 음식을) 말로 설명할 때는 억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실제로 접하고는 정말) 덥죽덥죽 먹었다”고 극찬했다. MC 김성주 역시 “비주얼을 보면 리소토 느낌도 있고 중화요리 느낌도 있다. 고기와 모든 재료가 크게 썰려있는데도 부드럽다. (100점 만점에) 99점”이라고 호평했다. 골목식당을 살리겠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잘 들어맞는 미담(美談)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그런 미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덮죽을 모방한 프랜차이즈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카인드코퍼레이션이란 업체가 “수개월의 연구를 통해 자체적인 메뉴로 개발해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런칭했다”며 서울 강남 일대에서 ‘덮죽덮죽’이란 브랜드로 영업을 시작한 것. 덮죽덮죽은 홍보 문구에 ‘골목식당’을 언급, ‘외식업 전문 연구진이 참여했다’며 마치 덮죽집의 프랜차이즈인 듯 소개했지만, 지난 9일 A씨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른 지역에 덮죽집을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뺏어가지 말아 주세요. 제발”이라고 부인하면서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덮죽덮죽이 골목식당을 언급하며 홍보했다는 점, 덮죽이 인기를 얻은 후 등장했다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덮죽덮죽은 덮밥집의 덮밥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관련 소식에 대중은 분노했다. 덮죽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좋은 결과에 함께 기뻐했는데, 발 빠르게 사업 수완을 부린 누군가가 그 공을 가로챈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인 제재는 요원했다. 덮죽덮죽 업체가 덮죽집의 레시피를 참조한 것이지 도용한 것은 아니기에 덮죽덮죽이 영업을 강행해도 법적으로 이를 제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족발 거리, 떡볶이 거리, 순대촌 등 특정 음식점 밀집가에는 분명 처음 시작한 누군가가 있을 테지만, ‘원조’ ‘진짜 원조’ ‘진짜 진짜 원조’ 등 수많은 원조가 뒤섞였듯, 상황에 따라 누가 원조였는지는 쉽게 잊힐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번엔 달랐다. 방송을 통해 대중이 덮죽의 탄생 과정을 지켜봤기에 누가 원조인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는 덮죽덮죽 불매 운동이 전개됐고, 골목식당의 정우진 PD 역시 언론을 통해 “(덮죽집을) 도울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번 건 외에도 소소하게 비슷한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심하다고 생각돼 조만간 방송으로도 다루려고 준비하고 있다. 노력 없이 ‘카피’하는 업체들에 경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여론이 악화일로를 걷자 지난 12일 올카인드코퍼레이션은 덮죽덮죽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 이상준 올카인드코퍼레이션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본사의 프랜차이즈 진행 과정에서 ‘메뉴명 표절’과 ‘방송 관련성 오인할 수 있는 문구’를 표기했다”며 “수개월의 연구와 노력을 통해 덮죽을 개발한 포항 덮죽집 사장님께 너무 큰 상처를 드렸다. 마땅히 지켜야 할 상도의를 지키지 않고 사장님께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대표는 올카인드코퍼레이션에서 진행하던 족발 프랜차이즈인 ‘족발의 달인’ 사업도 종료할 뜻을 전했다.
이번 일에서 소비자 불매 운동 여론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키로 작용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업 아이디어의 수집 및 도용이 손쉬워졌지만, 그만큼 기민해진 불매 여론 응집력이 주효했다. 또 윤리적 소비 기준이 높아지고, 이를 어기는 업체에 대한 소비자의 응징이 가능하다는 ‘효능감’이 널리 퍼지면서 소비자의 집단행동이 힘을 얻은 결과로 풀이된다.
책 『2020 트렌드 코리아』의 공동 저자인 김난도 교수는 “개인성이 화두인 사회에서 자란 젊은 페어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길 원한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불붙는 불매 운동은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이러한 공평성·선함·효능감에 대한 열망이 표현된 것”이라며 “(그 이유는)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지만 저성장 시대의 좌절감도 경험하고 있는, 치열한 경쟁이 생활화된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아울러) 정보 통신 기술의 영향력으로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페어 플레이어 세대의 효능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현시대를 분석했다.
덮죽이란 메뉴가 골목식당을 통해 소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불매 운동 여론이 쉽게 결집하는 기술·통신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더라면, 공정함에 관한 기준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번 일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작은 파장으로 그쳤을지 모른다. 떡볶이 프랜차이즈점이 즐비하듯 시간이 많이 흘러 덮죽이 친숙해진 어느 시점에 다양한 덮죽 프랜차이즈가 등장할지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불가한 일이다. 덮죽집 사장님의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또 그것이 현세대가 품은 공정의 기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