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고구마 전래자 조엄과 목민리더십 『조선관리, 먹거리 혁명에 뛰어들다』
[책 속 명문장] 고구마 전래자 조엄과 목민리더십 『조선관리, 먹거리 혁명에 뛰어들다』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10.1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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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먹거리가 지천인 오늘날 아사를 면하기 위해 흙까지 파먹었다는 얘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아를 면한 것은 채 30년도 되지 않는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굶주림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긴박한 민생고였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왕조실록』에만도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가 연이어 일어나 기민(饑民)들이 집을 버리고 먹거리를 찾아 전국을 유랑했다는 기사가 부지기수로 나온다. 

오늘날 먹거리의 80%를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과거의 어려움을 반추해 볼 때 식량주권 문제는 도외시할 바가 아니다. 지금 당장 배부르다고 내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전쟁 위협, 극단적 자원 편중, 나날이 치열해 가는 자원 전쟁 등은 앞으로 우리가 식량 문제에서 어떤 극단적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우리나라는 더군다나 자연자원마저 풍족하지 않다. (중략)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들여온 이는 조엄이다. 조엄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돼 대마도에서 처음 고구마를 보고 기아 대책의 최적 작물임을 직감한다. 당대 최고 관료집안 출신이자, 세도 등등한 풍양 조씨 문벌가였던 조엄은 왜 고구마에 그토록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일까? 이는 조엄이 살던 시대의 식량 사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중략)

사료를 살펴보면, 조정이 권농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흉년이 계속 들어 농민들의 삶이 극한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빈민 증가와 더불어 기댈 곳 없는 백성들은 유리걸식했다. 이 같은 처참한 사정에 조엄은 조선의 관리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뼈저리게 각성했다. 백성 구휼 문제가 심대하게 대두된 시점에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것이다. (중략)

고구마가 전래되며 조선의 구황정책에 일어난 변화는 실로 대단했다. 물론 초기부터 즉각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서서히 확산 돼 가며 재배 지식과 함께 좃너의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해법으로 자리 잡아 갔다. 이어 명실상부 뭇 생명들을 기아로부터 구하는 핵심 구황작물로 자리 잡게 된다. 

18세기 조엄의 ‘먹거리 리더십’을 살펴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그가 지닌 목민관적 리더십이다. 조엄은 당시 기득권의 최상층부에 있던 인물이지만, 자신의 넉넉함만을 좇아 안일에 머물지 않았다. 조엄 이전에도 수많은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향했지만, 누구도 고구마 존재는커녕 그 가치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가져오려는 실천력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가치 발굴 능력과 높은 실행력을 드러낸 조엄은 달랐다. 

그는 고구마 도입뿐만 아니라 일본식 수차, 제방, 배다리, 건축양식, 실용기술 등 일본 기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는 보다 높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몰입의 차원이 빚어낸 결과였다. 나아가 통신사 수장으로서 문화국 조선의 자부심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개방적 태도를 견지했다. 실재를 숭상치 않는 당대 사대부 관료층의 명분론적 태도와 현격히 다른 것이었다. <6~10쪽>

『조선관리, 먹거리 혁명에 뛰어들다』
전경일 지음│다빈치북스 펴냄│248쪽│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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