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렁총각 하나 갖고 싶나요? 『백귀야행』
[리뷰] 우렁총각 하나 갖고 싶나요? 『백귀야행』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08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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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렁총각이라면 하나 갖고 싶지. 내가 돌봐야 하는 남편은 싫어.” 
결혼을 부추기는 사촌 언니로부터 소현은 정말 우렁총각을 선물 받는다. 유리 수조 안에 들어 있는 주먹만 한 우렁이는 ‘우렁이가 사람으로 변했을 때 마주치지 말라’는 주의사항 하나만 지키면 사람이 없을 때 총각으로 변신해 가사 도우미 역할을 해낸다. 통장에서 꼬박꼬박 삼십오만원씩 나가는 것만 제외하면 소현의 생활은 전보다 훨씬 편해진다. 

모든 재미있는 이야기의 금기들이 깨지듯, 파경을 맞은 사촌 언니와 술을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던 소현은 우렁총각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우렁총각은 우렁이로 돌아가지 않고 소현에게 결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소현은 비혼주의자. 

“결혼할 수 없다고요?”
“결혼 안 해. 너뿐만 아니라,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아. 결혼 같은 책임은 지지 않아.”
소현의 말을 들은 우렁총각은 상심한 채로 우렁이로 변해 더 이상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현의 등 뒤에서 원망의 눈빛을 쏟아낸다. 소현은 그런 우렁이를 중고 거래 사이트에 팔아버린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저 우스운 이야기이겠지만, 소연은 우렁의 원망 어린 눈초리에서 반성할 점을 찾아낸다. “우렁의 원망 어린 눈초리가,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남한테 미룬 사람이 받는 업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내가 먹고 자고 싸면서 나오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내가 어떻게든 책임져보려 해야 하는 것인데, 그걸 남한테 미루려면 돈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오가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우렁이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한 건 오버였지. 하지만 ‘돈을 냈으니 서비스를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그 못지않은 오버일 수 있는 것 같아서.” 

남성의 돌봄노동이 오히려 여자들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억울함에서 시작된 소설은 돌봄노동의 혜택만 누리고 그 노동을 제공하는 주체를 살피지 못한 소현의 반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모든 서비스 뒤엔 노동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PC 통신에 글을 쓰다 1994년 스물여섯 나이에 소설 「청소년 가출 협회」로 등단하고, 같은 해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 연구 부분 인용』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집을 펴낸 송경아 작가. 그의 작품 여섯 편을 묶어 펴낸 소설집 『백귀야행』 속 「나의 우렁총각 이야기」다. 다른 다섯 편 역시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백귀야행』
송경아 지음│사계절 펴냄│224쪽│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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