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남의 집 침실에서 몇 달째 나오지 않는 남자 『데어 벗 포 더』
[리뷰] 남의 집 침실에서 몇 달째 나오지 않는 남자 『데어 벗 포 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0.06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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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지인을 따라 어느 디너파티에 참석한 한 남자. 마일스 가스란 이름을 지닌 이 남자는 사람들이 디저트를 기다리던 사이 위층의 예비 침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 낯선 손님의 이상 행동에 당황한 집주인 제네비브 리는 그의 지인을 수소문하는 한편 언론에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는데, 그 사이 유명인사가 된 마일스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의문의 남성 마일스 가스. 소설은 그런 의문을 베일을 벗기듯 한순간에 공개하지 않는다. ‘데어’(There) ‘벗’(But) ‘포’(For) ‘더’(The) 네 가지 이야기를 통해 암호처럼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데어’

‘임시 영국 센터’라 불리는 곳에서 난민 관련 일을 하다가 그만둔 애나 하디는 약 이십 년 전 글쓰기 대회에 선발돼 영국 십 대 청소년 쉰명과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마일스 가스를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다. 당시 혼자 스코틀랜드에서 온 터라 무리와 겉도는 그녀에게 유머러스하게 말을 건네주던 이가 바로 마일스 가스다.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마일스 가스를 20년 만에 찾아온 그녀를 묻는다. “당신 거기 있어요?”

‘벗’

“내가 그러나(But)라는 단어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생각해 보니 이 단어는 항상 우리를 옆길로 데려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녀석이 데려가는 곳은 언제나 흥미롭지요” 마크는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마일스와 ‘그러나’에 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며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혼자 가기 싫었던 디너파티에 마일스를 데려간 이도 마크다. 그런데 마일스는 도대체 왜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둔것일까?

‘포’

90세가 넘은 치매 노인 영 부인은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를 수집했던 막내 딸을 젊은 시절 잃었는데, 이후 매년 딸의 기일이 되면 한 소년이 찾아왔다. 별말도 없이 가끔 무언가를 주고 가던 그는 올해도 올 수 있을까?

‘더’

아홉 살 소녀 브룩은 마일스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둘은 문틈으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언어유희를 나눈다. 예비 침실에 들어가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마치 기사 제목에서 더(the)를 빼도 사람들은 거기에 더가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아무도 그녀를 백인이라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백인이다.

소설은 우리 사회의 면면을 다각도로 들춰내며 시간, 역사, 기억, 생각, 존재, 인식론 등의 진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소개한다. 괴상하지만 아름다운 결말로 독자를 인도하는 이야기.

 

『데어 벗 포 더』
앨리 스미스 지음 | 서창렬 옮김 | 민음사 펴냄│444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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