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결함을 위한 소야곡
불결함을 위한 소야곡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10.04 16:5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무심천을 찾았다. 그곳 천변을 하릴없이 거닐며 어린 날의 추억을 불현듯 떠올렸다. 동심의 순수 탓인가 보다. 유년에 겪은 일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이 선명해진다. 

그 당시 무심천은 어린 눈에 바다처럼 광활하기만 했다. 물이 맑았던 냇가엔 송사리, 모래무지 등의 고기 떼들이 유유히 헤엄치곤 했다. 고무신으로 그것을 잡다가 지치면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멱도 감았다. 이도 싫증 나면 어머니 곁에서 빨래를 도왔다. 어머니는 손수건, 양말 등의 부피 적은 빨랫감을 내게 건네주곤 했다. 어머니를 흉내 내어 걸레를 빨 양으로 그것을 힘껏 방망이로 두드렸다. 방망이를 맞은 걸레가 금세 깨끗해지는 게 신기했다. 

우리 집 걸레는 행주처럼 늘 희고 깨끗했다. 어머닌 항상 무명 걸레를 사용하였다. 그리곤 이것의 청결을 위해 양잿물에 삶기 예사였다. 요즘처럼 표백제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걸레 외에도 때가 제대로 빠지지 않은 빨랫감은 양잿물로 삶았다. 집안일 돕기를 즐겼던 나는 마루를 닦다가 걸레가 더러워지면 펌프 물로 빨았다. 그때는 무명천으로 만든 걸레는 집안의 필수품이었다.

요즘은 흔하던 걸레가 집안에서 사라지고 있다. 물이나 오물 등이 집안에 쏟아지면 휴지 및 물티슈로 닦아내곤 한다. 시중에는 청소용 물티슈가 시판될 정도다. 지인 집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거실 바닥에 쏟아진 음식물을 지인은 물티슈로 닦는다.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걸레로 닦지 아깝게 왜? 물티슈로 거실 바닥을 닦느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걸레를 일일이 빠는 게 귀찮고, 한편 걸레에 손대기가 왠지 꺼려진다고 답하였다. 

흔히 걸레는 불결하고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청소 도구라서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아이러니한 말일지 몰라도 걸레는 깨끗하다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매우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다.

걸레는 온갖 더러운 물질 앞에서도 아무런 거부 반응이 없다. 청소용품으로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낸다. 먼지, 지저분한 물질을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그것들을 제 몸으로 한껏 흡인(吸引) 한다. 걸레는 고약한 냄새의 똥이나 위험한 물질에도 결코 몸 사리지 않는다. 자신 앞에 놓인 어떠한 것일지라도 가리지 않고 혼신을 다해 깨끗이 닦는다. 심지어는 온몸으로 닦느라 전신이 갈가리 찢어져도 군소리 한번 뱉지 않는다. 도무지 불평불만을 모르는 존재다.  

걸레는 더러워지면 깨끗이 빨아야만 재사용 할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 그 재생 능력은 오히려 인간보다 탁월하다. 마치 자신의 성찰을 끊임없이 하는 구도승(求道僧) 자세라면 지나칠까. 이런 걸레와 달리 인간은 어떠한가. 오염되지 않은, 건강에 좋다는 음식만 가려서 섭취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뱃속은 순백(純白)은 물론 이려니와, 순결(純潔)하지도 않다. 온갖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얽힌 욕망의 불순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언젠가 뉴스에선 어린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출소를 앞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보도됐다. 그 공포는 다름 아닌 교도소 문을 나선 범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갱생하기는커녕,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이 범인의 일이 아니어도 어린이를 상대로 성폭행을 하는 인간은 짐승만도 못하다. 어찌 인두겁을 쓴 인간으로서 어린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단 말인가. 그리곤 술에 취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전혀 기억 못 한다고 소위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삶을 살며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은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본다면 반성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그 성폭행범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참으로 가증스럽다. 흔히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일을 저지르는 인간을 일러 ‘쓰레기 같다’에 비유한다. 그러나 쓰레기는 모으고 가르면 재활용이라도 하잖는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폭행을 하는 자들은 하다 못해 걸레 및 쓰레기만도 못한 구제 불능의 인간이다.  

로봇 청소기 및 물걸레 청소기까지 가전 기구의 신제품 발달로 우리네 삶이 편리하다. 하지만 나는 평소 걸레를 자주 애용한다. 이즈막 깨끗이 빨은 걸레로 집 안 구석구석 먼지 닦는 일에 매료됐다. 걸레질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의 속진(俗塵)도 남김없이 닦이는 듯해 상쾌하기 그지없다. 또한 걸레로 집안을 윤이 나도록 청소를 마치고 나면 가슴 속이 후련하다. 개운하기조차 해 노래라도 목청껏 부르고 싶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보고서 2020-10-04 19:59:50
기우는 옛날 중국기나라사람의 걱정에서 유래된 고사로서 쓸데없는걱정이란 의미입니다. 출소하는 어린이성폭행범의 재범을 걱정하는게 쓸데없는걱정은 아니지요...

이진철 2020-10-04 18:43:45
"범죄를 또 저지를지 모른다는 기우였다 " 문장에서 '기우였다'-----> '우려였다'로 고쳤으면 좋겠네요..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