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 『고요한 인생』
[책 속 명문장]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 『고요한 인생』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10.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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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너는 많은 욕심은 없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면서 책 읽으며 아주 고요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엄마 돈을 몰래 훔쳐내는 아버지 없이,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 당하지 않고 교양 넘치는 식탁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 그 정도만 충족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중략) 그래서 너는 네 현재의 삶에 자신이 붙었고 이상적인 가정의 친자녀와 진배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네가 락스를 먹인 적 있는 연년생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의 네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고요했다. - 「고요한 인생」

얘야.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난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얘기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한테 겁이란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내게 소중한 것은 바로 너였다. 내 육신이 네게 거추장스런 존재가 될까 봐 나는 그것이 정말 겁이 났다.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 「아들」

언젠가는 도와야 해, 때가 되면 말이야. 우리 형제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러다 포기할 거야,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헛된 소망을 단념하고 제 분수에 맞춰서 살 날이 올 거야, 제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저라고 못할 게 뭐람. 차마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훗날 우리는, 우리를 마음 쓰이게 했던 어떤 인물 하나가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홀가분하게 여기지나 않을까요. 그 생각을 하노라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언니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더 이상 죄 짓기 싫어서 이 세상을 하직했을 수도 있어요. - 「언니의 봄」

갑석은 송달수 씨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송달수 씨가 싫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가장 혐오스러웠던 건 모친을 대하는 송달수 씨의 태도였다. 경제적 자립만이 집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서 송달수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업계고교에 진학했다. - 「언더독」

『고요한 인생』
신중선 지음│내일의문학 펴냄│204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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