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세상’과 ‘헌법 읽기’의 상관관계
‘공정한 세상’과 ‘헌법 읽기’의 상관관계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10.0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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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 영화 <변호인>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양우석 감독의 영화 <변호인>(2013)은 ‘부림사건’(釜林事件)을 모티브로 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집권 초기에 통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폭압 정치의 일환으로, 소위 ‘민주화 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부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감금해 구타 및 고문한 사건을 말한다.

부산에서 잘나가던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부림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변론하기 위해 법정에 선다. 그는 법정에서 학생들에게 거짓 죄를 뒤집어씌우려던 고문 경찰관 ‘차동영’(곽도원)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공정을 저울질 하는 법정에서 왜 송우석은 지극히 상식적인 헌법 조문을 목이 터져라 외쳤을까. 이유는 간명하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법정이었기 때문이다. 공정이 없는 세상은 상식적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처절하게 외쳤다. 신군부 세력이 자신들의 통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다가 두들겨 패는 불공정하고 무자비한 세상에서 말이다.

부지영 감독, 영화 <카트> 스틸컷

이번에는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2014)를 살펴보자. 이 영화는 언제나 고객 만족 서비스를 위해 온갖 컴플레인에도 꿋꿋이 웃는 얼굴로 일하는 ‘더 마트’의 직원들이 어느 날 회사로부터 갑작스레 해고통지를 받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염원하던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를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불공정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한다. 이에 회사는 노조의 대표로 선출된 선희를 따로 부른 뒤 ‘정규직 제안’으로 회유해 노조를 와해하려 한다. 말하자면 노노갈등(勞勞葛藤 :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유발 작전. 자신들의 불공정한 행위를 ‘을’들의 싸움으로 전환하는 ‘갑’들은 역시 물타기(본질 흐리기)의 귀재들이다.

<카트>의 대본을 쓴 김경찬 작가는 “누군가는 영화를 ‘예술’이라 여기고 누군가는 영화를 ‘산업’이라 부른다. 생뚱맞지만 나는 영화를 ‘미디어’로 규정한다”며 “이 영화의 각본을 쓰게 된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제33조(‘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때문”이라고 밝혔다.

<변호인>과 <카트>는 모두 ‘헌법’을 말한다. 헌법은 국가 통치의 기본원리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그러니까 헌법의 가치를 구구절절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기본적인 규칙과 상식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면 규칙과 상식을 바로 세워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헌법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책 『지금 다시, 헌법』의 저자 차병직은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의 사람도 생활의 고단함이 참기 불편한 정도에 이르면 헌법을 찾는다.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변화를 일으킬 힘을 그 속에서 얻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현실은 각자로부터 시작해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풍경”이라며 “행동으로 현실을 창조해가는 과정에 이성과 감정의 배분을 어느 정도 비율로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에도 헌법의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탄핵 판결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여러 범법 행위가 드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마저 거부하는 등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것은 공정한 세상 만들기에 관심이 없다는 뜻과 같다. 책 『헌법의 발견』의 저자 박홍순은 “헌법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과 이해 부족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특정한 정부나 세력이 헌법 해석을 독점하면서 국가 정체성이 왜곡되고 주권을 비롯한 국민 권리가 훼손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공정한 세상 만들기는 물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의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헌법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이 그랬던 것처럼. <카트>의 각본을 쓴 김경찬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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