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마지막 축, ‘이해충돌방지법’은 무엇?
김영란법의 마지막 축, ‘이해충돌방지법’은 무엇?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9.23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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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권익위원회]
[사진=국민권익위원회]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개인→가정·직장→사회→국가. 국가를 운영하는 힘은 공권력에 있고 그 힘을 행사하는 권한은 공직자에게 있다. 공직자는 사회 구성원에게 강제되는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거나, 심판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그 과정에서 권한 사적 남용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부정한 청탁을 받을 수도, 할 수도 있는데, 2015년 일명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에 관해선 일정 부분 통제장치가 마련됐지만, 애초 김영란법에 포함됐던 ‘이해충돌방지법’(직무수행 과정에서 공직자의 공적 의무와 사적 이익이 충돌할 경우 공익을 우선하도록 하는 법률)은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란 이유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존 김영란법(부정 청탁·금품 수수 금지)이 청탁을 주고받는 걸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예: 토지 개발 정보, 채용 정보 등)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공직자가 개인의 이익 추구와 관련된 일을 맡아 공정성 위배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최근 그런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이 계속해서 구설에 오르고 있는데, 그중 한명이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다. 과거 건설업에 종사했던 박 의원은 자신의 경력을 살려 지난 5년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박 의원 가족이 운영하는 건설사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산하기관(국토교통위원회의 피감기관) 등과의 거래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어냈다는 점이다. 공사 수주 금액만 400억원, 기술 사용료 수입을 더하면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의원은 여기에 이해충돌은 없었다는 입장. 지난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 의원은 “가족 회사가 공개 경쟁입찰로 공사를 수주했다. (오히려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아들이 나로 인해 사업에 제약을 많이 받았다. 전보다 수주량이 많이 떨어져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같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과거 삼성물산 사외이사를 역임했던 윤창현 의원 역시 정무위원회 활동으로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삼성 출신이 삼성 지배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정무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 윤 의원은 2015년 삼성물산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토대가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전력으로 인해 ‘이해충돌 당사자’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당한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홍걸 의원은 남북경제협력 관련 주식을 보유해 지적받았고, 20대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를 지낸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은 업무상 알게 된 정보(목포 도시재생 사업)를 이용해 사전에 부동산을 차명 매입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사실 이해충돌을 완벽히 잡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거처럼 ‘~해줘’ ‘~하지 마’ 등 노골적 표현을 자제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채용 청탁을 할 때도 “뽑아 달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들어보니까 이번에 우리 딸 OOO가 OO기업에 지원을 했다네”라고 넌지시 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야 이후에 문제가 돼도 청탁이 아닌 가족의 근황을 전한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책 『남산의 부장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속 박 대통령도 살해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 “임자 뒤에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했을 뿐이다.

또 이건 힘을 가진 자가 요구하지 않는다고 모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탐사보도 매체 <셜록>의 보도에 따르면 어느 금융기관에선 간부 자녀와 이름, 나이가 똑같은 지원자를 해당 간부의 자녀로 오인해 합격시켰다가 다시 탈락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힘을 가진 자가 할 법한 이해충돌의 고민까지 알아서 처리해주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진=국민권익위원회]
[사진=국민권익위원회]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직무수행 과정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소속기관장에게 신고 후 해당 업무에서 배제되도록 회피 신청을 해야 하고 ▲본인과 가족이 직무 관련 인물과 금전 거래를 할 때도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또 공공기관 물품·차량·토지·시설 등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직무 중 알게 된 비밀을 (본인 및 제 3자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공개경쟁 외) 가족 채용도 금지된다. 이를 어길 시 1,000~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직무상 비밀이용 금지규정을 위반해 부당한 이익을 얻은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원, 시도만 한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책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에서 “궁극적으로 금품수수와 부정청탁만 막아서는 안 되고 그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다른 유형(이해충돌)을 다 막으려 한 거지요. 처음에 제가 이 법(이해충돌방지법)을 만들 때, 공직자의 사익추구방지법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공직자가 공적인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자는 뜻을 담았던 거지요. 이해충돌방지와 관련한 규정들이 직접적인 사익추구를 막는 규정들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였거든요. 결국 이 세 가지가 한 세트로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지요”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세 축(금품수수·청탁·이해충돌 금지) 중 최종 한 축(이해충돌 금지)이 남았다. 금품수수·청탁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상당한 자정 효과가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덜컹거렸던 우리 사회가 세 축으로 완성된 김영란법 바퀴에 올라타면 좀 더 안정되게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 도래의 여부가 국회의원들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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