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이 중요한 이유… “어휘는 그 사람의 품격”
어휘력이 중요한 이유… “어휘는 그 사람의 품격”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9.21 12: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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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일찍이 장자는 “글은 뜻을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자의 말처럼 글은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다. 인간의 감정은 애초에 글이라는 것으로 표현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쓴다. 너를 생각하는 나의 이 절절한 사랑을 글자로나마 ‘확인하기 위해’ 쓰고, 특정 사회 현안에 대한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뜻을 글에 완전히 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뜻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다르기 위해 쓴다.

한편의 글을 물리적으로 완성시키는 것. 바로 ‘어휘’(낱말, 단어)다. 바꿔 말하면 글을 쓴다는 것은 맥락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고 조합하고 나열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글쓰기의 기본은 어휘력이며, 알고 있는 어휘를 글의 맥락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다. 책 『어른의 어휘력』의 저자 유선경 역시 “책 읽기, 글쓰기, 말하기, 공감, 소통도 어휘력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이른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모든 영역의 요체가 어휘인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연인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쓴다. 연인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만, 사랑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물론 사랑은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이라 단일한 의미로 수렴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정확한 의미란 사전적 의미를 가리킨다. 사전에서 사랑을 찾아보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 문장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나는 너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긴다.”

어휘의 간단한 원리를 알아봤다면, 이제 어휘력을 키우는 데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들을 파악해볼 차례다. 그 조건 중 하나로 저자는 “내 말이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인지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공감능력을 갖춘 이들은 어휘 선택과 태도에 신중하다. 남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이며 제한적이고 시종 감정적인 어휘’ 따위는 이용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습관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주효한 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진실로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휘력을 키우는 으뜸 조건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실로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나고, 성나고, 날카로운 말이 나간다. 이런 ‘나쁜 예’는 실로 무궁무진한데, 특히 한국의 정치 사회를 들여다 볼 때마다 어휘 선택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가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 때, 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소설 쓰시네”라고 답했다. 다소 억울하고 답답한 부분이 있더라도 행정부의 관료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질의에 비아냥거리듯이 답변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이는 나아가 ‘소설’이라는 문학 자체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이어진다. 이후에 추 장관은 “상당히 죄송하다”라며 위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어휘력을 키우는 으뜸 조건이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라면, 공감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 바로 ‘문장 수집’과 ‘필사’(筆寫)이다. 특히 필사는 ‘매우 느리고 정확한 독서’로 어휘의 양 자체를 늘려줄 뿐만 아니라 문장 안에서 어휘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꾸준한 필사는 사고력 확장에도 도움이 된다.

다음은 조금 독특한 방법인데, 저자의 경우 “영화를 한 번 본 후에는 볼륨을 완전히 줄여놓고 영상만 보면서 대사를 쓰기도 했다”며 “영화를 교재로 삼은 이유는 문학작품보다 흐름이 분명하며 무엇보다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서사의 구성과 흐름을 익히는” 방법으로 어휘는 물론 상황이나 맥락에 맞는 글쓰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결국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원래 인간은 아는 만큼 볼 수밖에 없다. 어휘력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채롭게 하고, 그 다채로운 세상을 명료한 생각(혹은 글)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 다채로운 관점과 명료한 생각이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어휘력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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