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해도 배고픈 이유... 범인은 ‘심리적 허기’
과식해도 배고픈 이유... 범인은 ‘심리적 허기’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9.0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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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미국의 유명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심리학자 필 박사 앞에 어느 여성 방청객이 불려 나왔다. 토크 주제는 ‘식탐’. 여성은 “나는 계속 먹어요. 배고플 때도 먹고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먹어요. 기쁠 때도 먹고 슬플 때도 먹죠. 밤에도 먹어요. 남편이 집에 올 때도 먹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필 박사가 당시의 느낌을 묻자 여성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할 수가 없다고 내게는 의지력이 없다고 느끼는 거죠”라며 무력감을 토로했다. 그날 방청객 대다수가 여성의 발언에 공감을 표했다.

식탐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던 시절에는 단순히 배를 채우고 포만감을 느끼는 데서 만족감을 느꼈지만, 비자발적 굶주림이 희귀해진 현시대에는 음식이 선사하는 맛의 쾌감이, 심리적 허기가 식탐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다이어트 명언 중에 “먹어봤자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이다”라는 말이 있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한 말로, 이미 알고 있는 맛이니 먹어봤자 새로울 게 없다는 의미인데, 사실 이 말이 누군가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옛말처럼 많은 사람이 경험해 본 익숙한 맛이 절제의 고삐를 놓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 행복감과 기대감, 충만감의 자극을 선사했던 ‘익숙한 맛’은 과식의 주된 이유로 자리한다.

사실 그런 자극의 추구는 쉽게 중독의 영역으로 발전한다. 최근 국내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국 음식 마라탕(麻辣烫) 처럼 맵고 얼얼한 조미료 자체가 중독성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과 별개로 섭식 자체가 습관이 된 사람도 적지 않은데, 이런 상황과 관련해 음식심리학자 키마 카길은 책 『과식의 심리학』에서 “과식이 다른 중독과 매우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늘고 있다”며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 검사 결과를 보면 몇몇 음식, 특히 달고 기름지고 짠 음식은 도파민 보상체계를 활성화한다. 도파민 보상체계는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의존증과도 관련된 두뇌 부위”라고 말한다.

여기서 보상체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오만가지 스트레스에 고통받는 현대인들이 과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보상체계와 연관됐기 때문이다. 우울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매운 음식을 먹고, 불안하고 초조할 때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밀어 넣는 일이 어느새 상식으로 통용되는 안타까운 상황. 『이거 보통이 아니네』의 김보통 작가는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는 상사의 태도에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다잡기 위해 밤늦게 야식을 시키며 이를 ‘시발비용’(시발+비용: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한 비용)이라고 지칭했고,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의 박상영 작가는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순살 반반치킨을 주문해 먹고 “지금 바로 누우면 어김없이 위산이 역류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몸을 침대에 눕혔다.)”고 했다. 힘든 일상을 견딘 자신에게 먹는 것만큼 저렴하면서 확실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탐을 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식품의약 전문가 데이비드 A. 케슬러는 책 『과식의 종말』에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식탐이 각종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는 옛 습관을 이겨낼 수 있는 ‘경쟁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단골 음식점을 피해 가는 퇴근길을 택한다든지, 잠금 앱을 통해 특정 시간대에 배달앱 사용을 금지하는 방법 같은. 셋째로는 옛 습관을 억누르는 생각이 필요하다. “한 입만 먹어볼까”보다 “한 입 먹으면 멈출 수 없어” “저녁을 적게 먹으면 내일 아침 상쾌함을 맛볼 수 있어”라는 식의 생각이 절제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이런 노력을 지지(비판)하고 응원(응징)할 지지자(심판자)를 세우는 것이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든, 비난이 두려워서든 혼자일 때보다 더 많이 인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식, 야식, 탐식의 원인은 대체로 분명하다. 음식 자체에 관한 식탐을 포함해 좋은 성적, 이름 있는 대학, 높은 월급, 안정된 직업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보상인 경우가 대다수다.

박상영 작가는 자신의 (살찐) 모습이 담긴 뉴스를 보고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 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무엇 때문에 (과도하게) 먹고,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허기에 힘들어하며 또다시 음식에 손을 내미는 것일까. 우리는 사실상 폭식의 원인과 해결책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매일 보게 된다. 그래서 더 잔인한 주제인 폭식, 오늘 밤만큼은 꼭 극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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