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365일', 기안84 「복학생」... ‘표현의 자유’ 끝은 어디?
넷플릭스 '365일', 기안84 「복학생」... ‘표현의 자유’ 끝은 어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9.07 08: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365일'. [사진=넷플릭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콘텐츠 창작에서 중요한 요소는 개연성이다. 꼭 그런 일이 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내용을 핍진성(개연성이 있다고 독자를 납득시키는 것) 있게 전하는 것. 다른 세계나 먼 미래 등 상상 속 내용과 마음속 내밀한 욕망도 핍진성만 수반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때로는 그런 ‘표현의 자유’가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폴란드 영화 <365일>이 그런 논란에 휩싸였다. 마피아 두목이 아름다운 여성을 납치해 자신과 사랑에 빠질 것을 종용하는 상황에서 실랑이 끝에 결국 여자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납치를 로맨틱한 것으로 위장했다’는 비판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에선 반대 여론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국에선 드라마 스트리밍 중단을 요구하는 백악관 청원에 10만명 이상이 동의했고, 동영상 앱 ‘틱톡’에선 반감을 표시하는 해시태그 ‘#365dayschallenge’가 퍼지고 있다.

[사진=네이버웹툰 「복학왕」 캡처]
[사진=네이버웹툰 「복학왕」 캡처]

최근 이처럼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전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은 여성의 성(性)을 취업의 도구로 삼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인턴 신분인 여주인공 봉지은이 정직원이 되기 위해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배에 조개를 올려 깨는 이상행동으로 정직원이 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된 것. 기안84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봉지은을 조개를 깨서 먹는 수달로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해명했지만, 반대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기안84 퇴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반면 웹툰협회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작품을 향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작가 퇴출 요구는 과도한 처사다’ ‘선택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의정부고 학생들이 졸업 기념으로 촬영한 '관짝소년단'. [사진=SNS]
의정부고 학생들이 졸업 기념으로 촬영한 '관짝소년단'. [사진=SNS]

의정부고 학생들의 이른바 ‘관짝 소년단 영상’도 비슷한 사례다. 학생들은 관을 들고 춤을 추는 가나의 장례문화를 패러디하면서 흑인 분장을 했는데, 이게 이른바 ‘블랙페이스’(비흑인이 흑인의 신체 특징이 드러나도록 과장되게 분장하는 것) 논란에 휘말렸다. 학생들은 순수한 의도로 온라인에서 널리 퍼진 영상을 따라 했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흑인 비하적 묘사다’ ‘비하 의도가 없는 순수한 모방이다’로 나뉘어 격하게 대립했다.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일부. [사진=김병욱 국민의힘당 의원실]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일부. [사진=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

그뿐 아니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초등 성교육 교재로 덴마크에서 제작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들여와 일선 초등학교에 보급했는데, 그 내용의 ‘적나라함’을 두고 논란이 크게 일었다. 남녀 신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그림과 동성애에 관한 설명, 성행위를 ‘재미있는 일’ ‘신나고 멋진 일’ ‘하고 싶어지거든’이라고 묘사한 표현 등을 두고 찬반 의견이 격돌하면서 여가부가 해당 도서를 회수하기로 했지만, 그런 여가부를 향한 출판계와 여성단체의 항의가 뒤따르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위 사례를 두고 많은 찬반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 찬성 측의 주된 논지는 ‘선택적 소비’다. 표현의 자유에 따라 작품을 만드는 건 창작자의 권리이며, 그 내용에 명예훼손 요소가 없다면 이용자가 취사선택해서 소비하면 된다는 것. 쉽게 말해 해당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말이다. 이에 맞서는 반대 측의 주된 논지는 ‘대중적 눈높이’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부터 대중적 관점이 고려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혐오감을 안길 수 있는 콘텐츠는 애초에 제작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모든 요구를 만족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허용의 폭을 넓히면 문제시되는 콘텐츠가 범람해 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그렇다고 보편적 관점을 강요하자니 그 기준이 모호해 무색무취한 작품만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대립의 긍정적인 면이 적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반발 여론을 접하면서 <365일>의 제작자는 차기작 제작 과정에서 앞서 제기된 비판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며, 기안84 역시 성인지감수성을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관짝 소년단 영상의 경우에도 ‘의도’가 선하더라도 ‘역사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초등 성교육에 있어서도 ‘눈높이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고려될 것이다.

채사장은 책 『시민의 교양』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소모적인 일이다.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다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소통하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소통을 시작하기 위해서”라며 “소통의 시작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이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위에 언급한 사례는 어느 한쪽의 주장을 정답으로 확언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또 ‘내 생각이 절대 진리’라는 고집보다는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포용이 필요한 문제들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