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우리의 삶은 모호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명료한 답을 원해요. 그래서 “명료한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어떠한 일반론도 각자 삶의 특수성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말입니다. 삶은 아주 쫀쫀하게 이어지죠. 시인은 그 부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 보는 상상력의 그물, 온갖 장치를 다 만들어놓고 펼치는 그 그물들이 정말 말도 안 될 때가 많죠. 점 하나 붙였다고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세요. 아주 허름한 상상력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짠 상상력의 그물보다, 사실 우리 삶의 그물이 훨씬 더 촘촘하게 짜여 있다는 겁니다. 참 맞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삶의 그물을 더 촘촘하고 튼튼하게 해주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주목하는 힘과 관련된 문장을 보실까요?
“꽤 많은 바닷가를 지나온 적이 있지만 파도소리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시인은 파도소리에 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나 봅니다. 부럽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은 거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어떤 파도소리는 꽃이라고 상상할 수 있고, 어떤 파도소리는 음악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거죠.
파도소리를 이렇게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는 힘이 있는가? 나이 들면서 그 힘이 얼마나 단련되는가? 내 촉수가 얼마나 예민해지는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얘기했던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런 화두들이 삶의 지향점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65~267쪽>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북하우스 펴냄│349쪽│16,000원